유 장 희 (학술원 회원, 이화여대명예교수)
지난 8월 17일 아침 한국인들에게 통쾌한 소식이 날아왔다. 만 37세의 노장골퍼 양용은 선수가 미국프로골프투어(PGA)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골프 황제’ 타이거우즈와 맞대결에서 보기 좋게 3타차로 물리치며 동양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골프동호인들도 열광했다. 타이거 우즈를 능가하는 차분함과 정교함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과단성 격찬하고 있다.
여기서 선진 골프계를 제압한 양용은의 성공사를 눈여겨보면서 선진경제의 문턱에서 몇 년째 머뭇거리고 있는 한국경제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없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양용은은 제주도의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 17세 때 보디빌더의 꿈을 안고 체력단련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대학진학을 희망하였으나 역시 가정형편 때문에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양용은의 최종학력은 고졸(제주관광산업고)이다.
대학은 못 갔으나 젊은이로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만하겠다는 의기(意氣)하나만은 살아 있었다. 제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처음에는 나이트클럽웨이터, 공사판 잡부로 전전했다. 친구의 소개로 용인골프연습장에 아르바이트로 취업, 어깨너머로 골프 치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연습장이 닫혀있는 밤중에 혼자 수천 개의 볼을 때리며 스스로의 꿈을 키워갔다. 드디어 24세 때 한국프로골프테스트에 합격하며 시합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30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일본투어에 진출했다. 당시 양용은의 처지는 아무것도 없는 무명의 프로골퍼에 불과했다. 월세 15만원 단칸방에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하는 힘없는 가장이었을 뿐이었다. 양용은은 일본투어에서 몇 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내에도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점에서 양용은은 위대한 결단을 내린다. 골프의 총본산인 미국에 진출해야만 골퍼로서의 성패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판단이다. 드디어 미국으로 건너가 36세 때 난생 처음으로 미국프로로부터 정식 레슨을 받는다. 그립, 어드레스, 백스윙 등 기본기(基本技)를 다시 터득하면서 자기에게 그동안 익숙해져있던 과거의 나쁜 습성을 과감하게 버린다. 이것이 큰 효과를 나타내며 드디어 미국프로골프투어를 제패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방황하고 있다. 과거식 경영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성장 동력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양용은의 성공사에서 유추할 점이 있다면 우선 한국의 국가 경쟁력에 대한 냉철한 자기반성과 겸허한 재평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과거의 나쁜 타성을 버리고 외부의 좋은 것은 과감히 배우려는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둘째는 선진경제를 만들기 위한 불굴의 집념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비단 정부나 기업뿐만이 아니고 노동계·교육계·문화계·예술계·체육계 전반에 걸쳐 일어나야 한다.
셋째, 기회를 과감히 포착하는 지혜와 이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정신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외신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지막 라운드에서 동행 팀을 구성할 때 주최 측에서는 포드릭 해링턴(전날까지 공동 2위)을 타이거 우즈의 상대역으로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링턴이 머뭇거리는 바람에 양용은에게 기회가 떨어진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선뜻 우즈와의 동행을 수락했던 양선수의 과단성과 기회포착능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넷째, 눈을 더 크게 뜨고 세계를 둘러보면 우리가 뚫고 들어갈 분야가 많이 있다. 경쟁이 치열하지만 문이 열려있는 곳이 도처에 있다. 양선수가 과감하게 미국프로골프투어에 도전장을 낸 것은 열린 장(場)에서 차별이나 편견 없이 오직 실력에 의해서만 성패를 판정하는 공정경쟁이라는 질서를 믿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도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자유와 공정의 논리가 통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옛 속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그러나 양용은을 보라.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온 것이다. 우리의 서민층, 저소득층, 소상인들, 중소기업들… 용이 되어 승천할 날이 꼭 있음을 믿자고 격려하고 싶다. 다만 양용은과 같이 불요불굴의 정신, 겸허한 자세, 결단하는 용기,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있으면 될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