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필요한 경쟁보다 표준선점위한 협력이 중요
지난 9월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은 2005년부터 삼성전자와 손잡고 추진하던 4세대 이동통신기술인 와이브로의 시범서비스를 포기했다.
BT가 시범서비스를 포기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에릭슨, 오렌지 등 유럽의 통신장비업체와 통신사업자들의 반대로 영국정부로부터 주파수를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4세대 이동통신기술은 에릭슨 등 유럽이 주도하는 롱텀에벌루션(LTE)과 한국이 주도하는 와이브로가 국제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에릭슨 등 유럽의 통신업체들은 BT의 와이브로를 시범 서비스함으로써 와이브로가 4세대 이동통신시장을 선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견제를 한 것이다.
국제 기술표준의 선점을 놓고 각국의 기업들이 벌이는 ‘총성없는 전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차세대 이동통신뿐만 아니라 차세대 친환경차의 표준을 놓고도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가 치열한 표준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하이브리드차(전기모터와 내연기관을 함께 사용하는 차량) 기술은 일본의 도요타가 선점하고 있다. 1997년 1세대 하이브리드인 프리우스를 개발해 지금까지 120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600여 가지의 핵심기술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결국 하이브리드차는 갈수록 도요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
이 때문에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은 하이브리드차 대신 전기차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2011년부터 전기차를 시판할 계획이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내년부터 전기차 ‘볼트’를 판매한다. 프랑스의 르노도 ‘플루언스 Z.E’를 내놓기로 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기술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경쟁에서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텔, MS, 휴렛팩커드, 질레트 등 우리가 아는 세계적 기업들은 대부분 표준을 선점하는 전략으로 시장을 재창조, 독식하고 있다.
게다가 1995년 WTO체제 출범이후 각 국이 관세장벽 대신 기술표준을 이용한 기술장벽을 강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기술표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안종일 기술표준원 기술표준정책과장은 “각 나라가 기술무역 장벽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여서 기술개발에만 주력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글로벌 표준선점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더불어 우리 기업들도 불필요한 경쟁에서 벗어나 협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최갑홍 표준협회장은 “국제표준을 선점하는 국가나 기업은 살고, 그렇지 못한 국가,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을 가진 국내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표준전쟁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제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삼성전자가 중국에 LCD기판 공장을 세우면서 과감히 LG디스플레이의 7세대라인을 따르기로 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LCD분야에서 세계 1, 2위인 삼성과 LG가 제휴함으로써 향후 한일간 LCD 패널 표준화 경쟁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MP3플레이어를 최초로 상품화한 회사는 ‘엠피맨’이라는 한국기업이지만 지금 전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브랜드는 바로 애플 ‘아이팟’이다.
엠피맨의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아주경제= 이형구 기자 scaler@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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