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시리즈 28]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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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3-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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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정치권과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최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이란 말 만큼 기업과 정치권의 바람직한 관계를 설명하는 것도 없다. 자칫 너무 가까우면 정경유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너무 멀어질 경우 국가경제에 대한 양측의 협력이 소원해질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역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천신일 게이트도 정치권과 기업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앞서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 회장은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위기를 맞았다. 대선 패배 직후 정 선대 회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을 선고받았다. 새롭게 출범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공약대로 재벌 개혁을 시작했다. 그리고 개혁이라는 명문을 앞세운 탄압의 총구는 현대를 정조준 했다.

효성도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라는 이유로 하이닉스 인수를 비롯한 사업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다.

삼성은 비교적 정치권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우에 따라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은 앞장서서 지원했다. 이를 통해 삼성은 기업 본연의 경영이 흔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류에 맞는 신사업 발굴에도 성공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삼성은 한동안 정치권과 비교적 거리를 뒀다. 정부는 기업들에게 투자 확대와 일자리 확충을 요구했지만 금융위기를 겪은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로선 맹목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없었다.

하지만 적절한 투자 대상이 나오자 삼성은 어느 기업보다도 빠르고 적극적으로 시행에 나섰다. 세종시 투자 계획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삼성은 최근 세종시에 신수종사업과 관련해 2조5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바이오시밀러를 제외한 대부분의 새로운 먹을거리 사업을 집중해 세종시를 신수종 메카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세종시는 투자 기업에 감세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은 철저히 외면하지만 사업성이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

이병철 선대 회장 당시부터 삼성은 이러한 기조를 유지해왔다. 실제로 이 선대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칼라TV 도입에 반대하자 “정부 때문에 한국의 전자기술 발전이 10년은 늦어졌다”고 비판했다.

반도체 사업 역시 정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이를 정면 돌파했다. 당시뿐 아니라 지금도 정부가 만류하는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은 많지 않다. 하지만 삼성은 반도체 사업에 매진했고, 이는 결국 삼성이 정치권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 질 수 있는 힘이 됐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의 ‘베이징 선언’이다. 이 전 회장은 15년 전인 1995년 베이징 출장 중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파격 발언을 했다. 평소 신중하고 속내를 잘 보이지 않는 이 전 회장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는 우발적인 것이라기보다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외국에서는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토지 제공과 감세 혜택 등을 서슴지 않는데 유독 국내에서는 지원은 커녕 낙후한 행정 처리로 기업의 뒷발을 잡는 것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것.

이 전 회장은 1997년 발간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삽시다’를 통해서도 “서울에 빌딩 하나 신축하려면 행정관서의 결재 단계에서 115개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뛰려고 하는 기업에 규제와 획일을 강요하면서 결국 기업의 자율과 창의성을 저하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이 전 회장의 생각은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의 시스템 변혁에서도 보인다. 삼성 구조본 출신 간부는 “삼성에서 사업 아이디어가 발탁되려면 많게는 14개의 도장을 찍어야 했지만 신경영 이후 기획 발안자와 책임자인 팀장, 결정권자 3명의 도장만 있으면 됐다”고 설명했다.

시스템을 간소화하고 조직원의 창의성을 독려하는 문화를 만들었지만 복잡한 행정절차로 시간이 지체되고, 창의적인 사업 아이디어가 사장되자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

이 발언 이후 삼성은 국세청 조사를 비롯해 직간접적인 정부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 역시 이 전 회장의 발언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이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냐”고 맞받았다.

그리고 2년 뒤인 1997년 한국에는 IMF가 찾아온다. 정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공중 분해됐다. 하지만 삼성은 정치권의 논리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미래를 준비함으로써 위기 속에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아주경제= 특별취재팀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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