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제 저녁 목적지인 양바징의 짱(藏)족 가정에 들렀다. 짱족들의 가옥밖엔 청 홍 황 백 녹색의 오색 깃발이 영롱한 빛깔로 나부끼고 있었다. 징판(經幡)이라고 하는 이 깃발의 황색은 토지, 백색은 하천, 홍색은 불, 청색은 하늘, 녹색은 초원을 상징한다고 했다. 짱족들은 거의 모든 건물마다 이 징판을 걸어놓고 복을 기원했다.
이 곳 사람들은 설이라는 명절에 대해 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춘제보다는 그들의 신을 섬기고 달라이라마를 경배하는데 더 열중했다. 크림슨 색의 붉은 법복을 걸친 장족 불교도, 인도 네팔쪽에서 들어오는 순례자들, 짱족 복색을 한 순박한 주민들이 어우러져 그들만의 축제를 즐겼다.
마을 주변에서 바라다 보이는 설산은 네팔 카투만두 쪽 히말라야 줄기라고 했다. 설산의 산기슭은 초원지대로, 마치 유럽 알프스 설산을 연상케 했다. 해발 4500m의 고산지대에 이르자 머리가 찌근찌근한 고산반응이 점점 심해졌다.
춘제 다음날인 10일 다시 라싸 시내로 들어왔다. 이날 우리 일행은 세계의 지붕에 건립된 하늘 궁전, 푸다라궁과 다자오스(大招寺)를 구경했다. 먼저 푸다라궁을 찾아 쟈우(覺悟) 석가모니와 손첸캄포 (松贊干布)를 안치한 방, 원청(文成) 공주상 등을 둘러봤다. 어떤 불상은 마치 악령처럼 끔찍한 형상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오싹하게 했다. 해발 3600m위에 세워진 이 궁전은 산과 하늘과 사람 구름 신이 공존하는 신전이었다.
푸다라궁 참관을 마치고 광장으로 내려서자 도로옆 광장 머리 맡에 중국의 국기 오성 홍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다가가니 석조 탑에 ‘시짱 화평 해방기념비’라고 적혀 있었다.
푸르죽죽한 인민해방군 군복 차림의 푸탈라궁 주변 경계병 모습이나 이 탑에 새겨진 해방 운운하는 글귀나 왠지 모두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점령과 해방, 화평과 독립요구, 언어도단. 부조리….'
문뜩 짱족들의 혼이 서린 푸다라궁 광장 머리맡의 오성기와 여기서 수천 ㎞ 떨어진 수도 베이징 텐안먼(天安門) 광장의 오성기 사이에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과거 짱족이 약소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땅에 사는 그 후예들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부질없는 생각 하지 말라는 경고이듯 꼬마 무리들이 달려들어 등에 맨 배낭속의 물건들을 훔쳐 달아났다. 저녁에는 숑파(雄巴)라고 하는 호텔에 묶었는데 한족들이 터뜨려 대는 폭죽 말고는 춘제 명절의 별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날 10시간 버스를 타고 르카쩌로 이동하려면 충분히 자둬야하는데 폭죽소리와 고산반응 때문에 단잠을 이룰 수 없었다.
티베트 라싸의 푸다라궁 광장에 게양된 중국의 오성기가 궁전을 배경으로 펄럭이고 있다.
(아주경제 최헌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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