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에 몰린 MB정부 핵심공약 '감세안' 지켜낼까
(아주경제 김선환 기자) 현 정부의 핵심공약인 감세안이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4·27 재보선 참패를 수습하기 위한 집권여당 신주류가 MB노믹스의 골자로 지목돼 온 감세안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 논의의 초점이 감세정책 철회에 맞춰진 가운데 정부만 외로이 기존 감세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야 감세철회 대세…재정부 외로운 싸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감세 관련 법안은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민주당 이용섭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안 세 갈래다. 현행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2억원 이하의 경우 10%, 2억원 초과 시는 22%의 세율이 적용되지만 내년부터는 2억원 초과에 대해서는 20%로 세율을 낮추도록 돼 있다.
정두언 의원과 이용섭 의원의 안은 내년에 계획된 2억원 초과 과세구간에 대한 법인세율 인하를 철회하고, 현행대로(22%) 유지하자는 게 골자다.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임된 황우여 의원과 러닝메이트였던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지난 12일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법인세 감세철회 번복을 시사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신주류의 대세는 양대 감세철회에 맞춰져 있다. 감세를 철회할 경우 세수 증대 효과는 법인세가 소득세의 3배 이상이어서 법인세가 감세 철회의 핵심으로 꼽혀왔다.
이 정책위의장은 앞서 경선에 나서면서 “당 주도의 추가 감세 철회와 10조원 서민예산 반영 요구로 여당의 친서민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특히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는 정두언 의원이 최근 대표발의한 법인세 추가 감세 철회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바 있다.
정두언 의원실 관계자는“정부가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법인세 세율을 낮추는 감세정책을 유지해왔지만 검증된 이론이 아니며,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감세로 인해 고용이나 투자가 증가된다고 입증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정희 의원의 안은 감세정책 철회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부자증세’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인세 과세구간을 2억원 이하, 2억원 초과~1000억원 이하, 1000억원 초과 3개로 세분화하고, 2억원 초과~1000억원 이하에는 현행 22% 세율을 부과하되 1000억원 초과에 대해서는 30%의 세율을 부과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행 8800만원 초과가 끝인 소득세법 과세구간도 8800만~1억2000만원 이하, 1억2000만원 초과로 세분화해 전자는 35%의 세율을, 후자는 40%의 세율을 2011년부터 적용하도록 돼 있다.
이렇게 되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각각 46조9472억원, 9조1434억원의 세수 증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 의원실의 추산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막대한 지출이 소요되는 서민복지를 내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세정책을 유지하면서 조세부담률을 낮추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야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까지 나서서 감세철회를 요구하고 있고, 더 나아가 고소득층에 대한 최고 과표구간 신설 등이 제안되는 상황에서 박 내정자는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5·6개각'으로 뜻밖의 경제총수에 발탁된 박 내정자는 잇따른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치르지도 않은 상황에서 논란의 소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만큼 감세논란이 가져올 수 있는 파괴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방문규 재정부 대변인은 “조만간 공식적으로 출입기자단과 상견례를 갖긴 하겠지만, 이 자리에서도 구체적인 정책현안을 언급하지는 않고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소신을 피력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재정부 세제실은 우군이 돼주어야 할 여당조차도 감세철회를 주장하고 나선 데 대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재정부 세제실 고위 관계자는 “정부 입장이 나오기도 전에 여당이 앞장서 쐐기를 박아 놓은 꼴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세제실은 MB노믹스를 이끌어 온 주역인 박 내정자가 감세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감세→기업활력 극대화→세수증대→복지지출 등 기대했던 경제의 선순환이 생각했던 것 만큼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내정자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의 대규모 감세정책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는 올해 24조원을 비롯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90조153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9년 말 세법 개정을 통해 연기된 소득세 및 법인세 최고세율이 내년부터 시행되면 여기서만 연간 3조원 이상, 2014년까지 약 14조원의 세수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적자 역시 2008년 15조6000억원을 시작으로 2009년 43조2000억원, 2010년 30조1000억원, 2011년 25조3000억원 등 4년 연속 지속되고 있다. 국가채무도 2007년 298조9000억원에서 2011년 436조8000억원으로 138조원이 증가했다.
정부가 서민복지와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정책목표를 강조하고 있지만 감세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양립 불가능한 목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지금으로서는 박 내정자가 감세안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감면을 해 준다고 해서 경제가 선순환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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