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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대한항공의 이중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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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5-1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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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방암 캠페인과 탑승거부

(워싱턴=아주경제 송지영 기자) 기자가 수년 전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한국과 많은 것이 달랐다. 그 다름 속에 어떤 점은 한국의 것이 편했고, 어떤 점은 미국 것이 편했다.

미국 땅에서 처음 다름을 느낀 것은 아니러니하게도 비행기 안에서였다. 아마 유나이티드항공(UA)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승무원이 모두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할머니' 수준의 여 승무원들이었다. 그것도 날씬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직원들이었다. "비행기를 오래 타면 건강에 안좋다는 데 몇 년이나 이 일을 했을까"하는 걱정도 됐다.

그럼에도 모두 서비스에 베테랑들이었다. 언어가 서툰 이방인 승객에게 최선을 다해 서비스했고,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고국의 '어머니', '아줌마'에게서 느끼는 편안함이 전해졌다.

한국에서 탄 비행기에서는 모두 '젊고', '섹시한' 여승무원들이 서비스를 했다. 미국 비행기 경험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문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홍콩 등 다른 아시아 국적의 비행기를 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의 승무원들이 일을 했으므로 '여승무원 일은 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은 미국에 와서 깨졌다.

최근 대한항공이 말기 유방암 환자 승객의 한국행 탑승을 거부해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키면서 예전 이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좋은 서비스에, 그 좋은 기내 환경, 그 멋있는 여승무원을 보유한 대한항공이 '환자가 비행 중 위급한 상태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서 탑승을 거부(회사 측은 탑승 결정 보류 및 검토 중이었다고 해명)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 주요 뉴스를 탔다. 직접 대한항공을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 기사 색깔은 기저에 회사 측을 비판하고 있었다.

거기에 미국 국적의 델타항공이 선뜻 나서 그 한국 여성의 고국길 비행을 승낙했다. 이 여행은 이 여성에 주어진 권한인 데다가 의사들이 발급한 장기 비행 허가 서한까지 있었기 때문에 델타항공은 문제삼을 이유가 없었다. 델타항공에는 아무 문제가 아닌 일이 왜 대한항공에는 큰 문제가 됐을까?

한국 항공사의 여승무원의 '섹시 콘셉트'와 이 사건은 얼핏 보면 상관 없어 보이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근저에 깔린 경영철학과 그 항공사가 속한 국가의 인권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인권이 강한 나라에서는 개별 회사가 법 테두리 안에서 정한 규정 내에서만 소비자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최대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법의 인권 보호 테두리가 약한 나라에서는 오히려 회사들이 개별적으로 정한 내규가 더 강하게 현실에 적용된다. 이런 면에서 이번 사건은 대한항공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한국 사회가 극도의 섹시 콘셉트로 움직이면서 그 테두리 안에 들지 못한 사람은 기죽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 온다. 모델 같은 항공사 여승무원 콘셉트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이같은 한국 문화와 맞물리면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이곳의 같은 여성들조차 한국 항공사의 여승무원들의 미모와 몸매에 혀를 내두른다.

문제는 이번처럼 섹시하지도, 또 파워가 있지도, 게다가 너무 아픈 승객이 대한항공을 이용할 때의 일이다. 자신의 신체 조건·상태, 돈의 있고 없음과 상관 없이 비행기 티켓값을 지불했으면 똑같은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당연한 고객의 권리가 거부 당했다는 상식적인 이해 때문에 전 세계 언론이 이 뉴스를 타전했다고 판단된다.

지난해 10월 대한항공은 유방암 캠페인을 한다며 승무원들이 리본을 달고 행사를 했다(그 홍보 사진 속의 주인공들조차 연예인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미모들이었다). 그러면 뭐할 것인가. 결국 현실 회사 운영 속에서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다.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일회성 유방암 캠페인을 한 것인지, 정말로 아픈 환자들과 그 가족들 때문에 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말기 유방암 환자 크리스털 김(62·한국명 김희숙)씨는 죽더라도 한국에 가서 죽고 싶다고 했다. 고국 땅을 너무 밟고 싶다고. 이제 김씨는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내용은 분명 인권유린과 차별일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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