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립대학교 등록금은 서울 소재 사립대(각각 약 1만 달러, 1000만원)와 비슷하지만 소득 수준이 미국이 더 높고 각종 장학금, 융자 혜택도 더 많은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상대적으로 훨씬 비싼 것은 사실이다. 주 경계선을 벗어나 다른 주로 대학을 진학하면 주립대라도 일반 사립대처럼 수만 달러의 등록금을 내야 하지만 마찬가지로 학비를 댈 수 있는 방법이 많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갔다는 말은 잘 들리지 않고 있다.
지금 여론은 한국의 대학들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받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 돈으로 교수, 직원들에게 1억원을 넘나드는 고연봉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대학 시장에 수요, 공급 논리 잣대를 대면 대학은 면죄부를 조금 받을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한 불균형 때문에 너도 나도 대학을 가야했고 또 못 가면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대학 나온 실업자가 대거 양산돼도 대학은 가야했고, 또 속칭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편입까지 불사해야 했다.
대학이 욕을 먹어야 하는 부분은 '상아탑'으로서 이 같은 문제와 모순이 아주 오랜기간 쌓여왔는 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를 이용해 '학과'를 우후죽순 만들고, 편의시설이나 교육 서비스 질은 개선하지 않은 채 학생들을 늘려 등록금 수입을 높여 왔다. 최근 10년 사이에 정부가 이 같은 대학의 모습을 규제, 조금 나아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같은 '등록금 난리' 양샹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대학은 해외 선진국들의 학문적인 이론만을 수입할 것이 아니라 대학 자체의 우수한 모습과 수준도 수입해야 한다. 유럽의 대학들은 왜 학비를 받지 않거나 받아도 아주 쌀까. 이를 고민하고 한국에 적용하려고 한 대학이 있었던가. 미국 대학도 지난 10여년간 학비가 많이 올라 학부모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지만 왜 한국 같은 전 국민적인 원성이 일지 않을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의 조그만 대학에서 뉴욕의 명문 콜럼비아대로 편입해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고, 빌 게이츠는 그 좋다는 하버드를 중퇴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했다. 아칸소 시골 출신 빌 클린턴은 술주정뱅이 계부의 폭려과 속박 속에서도 워싱턴DC의 조지타운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와 옥스포드 법대를 다녔다. 클린턴이 마찬가지로 시골에서 올라온 힐러리를 만난 곳이 예일대 로스쿨 시절이었다.
게이츠 말고는 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이들 미국의 리더들은 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녔다. 누구 하나 학비가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는 사람이 없다. 만일 이들이 이때 제대로 학업을 하지 않았다면 미국의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한국 대학들은 이같은 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 같다. 학비가 아무리 비싸도 열심히 공부하려는 인재들이 큰 학비 걱정 없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는 수단을 많이 만들면 누가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 부모의 재력에 따른 교육 기회의 불균등, 교육 서비스의 불균형 등을 해소하려고 적극 나서고, 만 20세 남짓한 어린 학생들의 꿈을 살려주고자 발벗고 뛴다면 한국의 학부모는 대학 등록금이 연 2000만원이라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대학 등록금을 기계적으로 반으로 내리자라는 선동적인 구호보다는 다각도의 현실적인 대안을 도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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