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둔화로 가처분소득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대출금리가 꾸준히 오르면서 가계의 대출 상환능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가계부채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 조만간 대출 총량 규제를 골자로 하는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경기회복과 부동산 시장 활성화가 동반되지 않는 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빚더미에 신음하는 가계
지난 1분기 말 현재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가계신용 잔액은 801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4% 증가했다.
가계 빚이 80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기간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287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실제로 국민이 지출 가능한 소득의 총계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국민총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신용은 2.79배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가계마다 번 돈보다 3배 가량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 배율은 지난 2002년 1분기 2.22배를 기록한 후 2003년 2.47배, 2004년 2.34배, 2005년 2.39배, 2006년 2.51배, 2007년 2.63배, 2008년 2.64배, 2009년 2.83배, 2010년 2.76배로 오르고 있다.
부채의 절대적인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금리까지 인상되면서 가계가 이자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3.25%까지 올리면서 대출금리도 덩달아 오름세를 타고 있다.
국민은행이 고시한 이번 주 양도성예금증서(CD) 연동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5.27~6.57%로 지난 2009년 1월 이후 3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각각 4.86∼6.30%, 5.16∼6.56%로 지난주보다 0.07%포인트 인상됐다.
반면 예금금리는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1분기 순수저축성예금의 가중평균 수신금리는 3.58%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4.5%를 뺀 실질 예금금리는 -0.92%로 나타났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6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은행권의 유동성이 풍부해 예금금리를 올릴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대출금리는 기준금리 인상폭이 바로 반영되기 때문에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정부, 대출 옥죄기 추진… 저신용층 타격 우려
가계부채가 국민경제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으로 인식되면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 대출 총량 규제와 대출 금리구조 개선을 골자로 하는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단기적으로는 금융회사의 대출 확대에 제동을 걸어 가계부채 잔액이 늘어나는 것을 막고, 중장기적으로 거치식 변동금리 대출을 비거치식 고정금리로 유도해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연체율 등 대출 관련 수치만 보면 위기 상황이라고 보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부실 사태는 늘 갑작스럽게 닥치는 법”이라며 “선제적 대응에 나선다는 측면에서 대출 확대에 제동을 걸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거치식 변동금리 대출은 이자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대출자에게 전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개선이 시급하다”며 “미국 등 해외에서도 고정금리 비중이 40% 이상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대출을 급격히 줄일 경우 신용등급이 낮은 저신용층이 우선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대출 총량 규제를 하게 되면 금융회사는 한정된 대출 재원을 우량 고객에게 집중적으로 제공할 수밖에 없다”며 “이럴 경우 저신용층이 타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전 수석연구원은 "가계부채를 단기간 내에 대폭 줄이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경기 및 부동산 시장 활성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어떤 대책도 미봉책에 그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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