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우리부자이야기> 잡화상에서 거부가된 신화두 천파수 회장



(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신화두실업그룹(新華都實業集團) 총수, 우이산여행(武夷山旅遊) 부회장, 쯔진광업(紫金礦業) 2대 주주. 모두 천파수(陳發樹) 회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행여격산(隔行如隔山, 하는 일이 다르면 산에 가로막힌 듯 이해하기 어렵다)’이라고 했지만 천파수는 백화점, 부동산, 광산, IT까지 전 영역을 넘나들며 명실상부 중국 최고 갑부 반열에 올랐다.

1961년 푸젠(福建)성에서 태어난 천파수는 어려운 가정 형편때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칠 수 없었다.

1982년, 천 회장은 목재를 가득 실은 화물차를 타고 샤먼(夏門)으로 향했다. 그는 한 회사와 목재 운송계약을 체결하며 차 두대 분량의 목재로 1000여위안(16만 7000원)을 벌었다. 자동차를 몰고 직접 운송하다가 나중에는 기차로 위탁운송을 맡았으며 86년에는 취안저우(泉州)에서 꽤 큰 목재무역상으로 성장했다.

이때 마련한 집을 담보로 천파수는 87년 삼륜차를 구입해 두 형제와 함께 구멍가게에 물건을 공급하다 곧 이 가게를 인수했다.

1995년, 천파수는 푸저우(福州)로 이동해 이 곳 둥제커우(東街口)에 신화두백화점을 오픈한다. 이름 석자도 쓸 줄 몰랐던 천파수가 중국 상업계의 신화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2001년 10월, 화룽(華榕), 화롄상사(華聯商社) 등이 잇달아 도산하고 당시 푸젠성 상업계 거물이었던 둥제커우백화점이 분산 매각될 때도 천파수의 신화두백화점만은 끄떡 없었으며 십수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7년, 前 푸젠성체제개혁위원회의 구조조정을 거쳐 신화두 산하 일부 우량자산을 핵심으로 한 신화두그룹이 탄생했다.

2000년 9월에는 즈진광업 지분을 인수한 뒤 2003년 홍콩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다각화 전략을 내세워 제약회사, 부동산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고 2009년 5월에는 칭다오맥주 지분 7%를 인수했으며 신화두정보과학기술을 차려 IT분야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차는 음식이자 문화품, 예술품’이라고 말하는 천파수 회장은 손님 접대를 위한 자리에서도 술 대신 차를 권하며 담배는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다도는 양심의 도(道)다. 다도의 정신은 자선(慈善)의 승화이며, 기업가로서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할 때는 차의 그것처럼 조용하고 담백해야 한다”고 천 회장은 말하곤 한다.

도가정신의 발현인 다도를 통해 경쟁에 찌든 인간관계 속에서 평온하고 우아하고 맑은 자아를 추구할 수 있다고 천파수 회장은 믿는다.

2009년 천파수는 개인 보유 주식의 90%(시가 83억위안, 한화 약 1조 3900억원)를 출연해 베이징(北京)에 신화두자선기금을 설립했다.
중국 내 최대 규모의 자선기금으로 빌게이츠의 자선기금과 같은 방식으로 운용돼 '중국의 게이츠'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천파수 회장은 자산 34억달러(3조 7000억원)으로 포브스 선정 중국부호 리스트 1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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