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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가나아센터 전시장에서 원로 조각가 최종태가 50여년전 기억을 더듬어 한국적이고 여성적인 작업을 하게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팔순의 조각가는 말을 쏟아내면서 연신 맑은 미소를 지었다. 더듬은 기억은 깨달음이었다.
"내가 그그저께 죽었더라면 내안에 있는 걸 모르고 죽었을텐데, 이걸 알았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야.하하하"
19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원로 조각가 최종태는 기분이 좋았다.
"..." 무슨말일까.
그는 "범을 찾으러 온 사방에 다녔는데 범은 울타리안에 있더라는 말처럼, 한국적인 것을 50년간 찾아다녔는데 그그저께 내 가슴안에 있는 걸 봤다"고 했다.
이마에 내천(川)자가 깊게 파이다가도 터지는 웃음에 내천자가 사라지곤 했다. 다시 그가 말했다.
"어느날 신문을 보다가 이거다 했지. 세계적인 첼로 거장 파블로 카잘스 인터뷰기사였는데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됐어. 기자가“나도 선생님처럼 행복이란 것을 알고 싶은데,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물었지. 그런데 그말이 기가막힌거여. 카잘스의 답은 간단했어.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라“..이렇게 기사가 끝났어. 내가 지금 내면으로 들어간거여…,그래서 괜찮은거여.하하하"
고향이 대전인 조각가는 서울서 50년넘게 살면서도 충청도사투리가 여전했다. ~야는 '~여~'라고 말하며 끝말이 살짝 늘어졌다.
"추사가 제주도 가서 한 얘기여....'入於外法 出於無法 我形我法' 세계미술사를 찾아서 다녔는데 이거였어. 피카소, 마티스도 내 머릿속에 없어, 나는 내 법으로 그리고 있다는 말이지. 그걸 3줄로 추사가 정리한 거야. 추사는 천재여~하하"
기억은 7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일제 식민지시대 그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하고 대동아전쟁, 6학년때까지 전쟁통이었다.일본이 이기는 이야기만 들었다. 세계정세는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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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조각가 최종태가 21일부터 '구원의 모상'을 타이틀로 개인전을 연다. |
그날, 고구마밭에 물주러 나온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중대방송이라고 했다. 교실에 일본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 창문을 닫았다. 그런데 창문이 금방 열렸다. "일본이 졌다."
일본말로만 하던 한국인 선생이 그날따라 조선말로 "너희들 이리로와봐"라고 했다. "오늘 일 그만하고 집에 그만 가봐라"
이상하다. 집에돌아간 그는 어머니한테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질리가 없다고…. 처음으로 의견을 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말은 곧 틀린 말이됐다.
얼마후 개학을 했는데 학교가 조선학교가 됐다. 일본말로 6년동안 공부해도 어려웠는데, 조선어는 일주일도 안돼서 한글책을 읽게 됐다.
"그때 선생님이 글을 좋하는 분이었어. 매일같이 작문을 해서, 받아서 고쳐주고 했지. 어느날 최종태 나오라고 하시더라구. "너는 글을 참 잘 썼는데 네 글이 아니다"라고 하는거여, 간단하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알아들었어. 조선의 30년 압박등의 내용, 마치 내가 독립운동한 사람처럼 신문에서 본 내용을 그대로 옮긴거지. (서울대)대학을 졸업하고 내 작품을 해야 하는데…, 그 때 그 선생님 말이 되살아 나는거여,묻혔있던 내용이 되살아 나는거여. 네 글을 쓰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조선의 역사, 미술에 대해 공부했지. 그 때는 서양것만 배웠어. 조선 미술은 1시간 밖에 없었어."
이후 그는 중국 중앙아시아 이집트 중동까지 또 아프리카까지 전세계를 누볐다. "한국의 맥을 살리는 일을 해야겠다."며 동서고금을 50년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제야, 정리가 됐다. 세계를 소화하고 가슴에서 깨닫기까지 50년이 걸린 셈이다.
'불각(不刻)'. 안만드는게 아니라 있을 것만 있는 것. 그의 작품은 단순하다. 그럼에도 슬픔과 기쁨, 고요와 엄숙함과 경건함이 섬세하게 전해진다.
법정스님 타계때 그는 더 유명해졌다. 길상사에 세워진 관음상은 그의 작품이다. 천주교신자인 그가 만들어 더욱 화제였다.
그가 전시를 열면, 종교인들이 부쩍 많다. 천주교, 불교 신자가 성모상같기도 하고 관음보살상같기도한 조각품앞에서 마음을 튼다.
'경계 없음' 형태의 집착을 버림으로써 진정한 형태를 찾았다. 성모를 닮은 관음보살은 규범의 굴레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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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여는 이번 전시에는 오방색의 채색목조각등 60여점을 선보인다. |
21일, 4년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은 이전과 달리 발랄해졌다. 함께 전시하는 알록달록 수채화가 스윽 스며든듯, 빨강 초록 노랑색등 오방색이 진동하는 채색목조각이 전시됐다. 새초롬 입을 모으고 가슴에 손을 모은 소녀상들이 웬지 가벼워보인다.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원로조각가는 "요즘에 기분이 좋아서 입모양을 스마일로 할까 했는데, 그러면 너무 헤퍼보여서…"라며 또다시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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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색이 고와 색칠을 안했다는 작품. 좌대도 작품만큼이나 멋있다. |
작품을 통해 '삶의 근원', '인간의 내면'에 대한 명상과 사색으로 이끄는 그는 이번 전시에 소녀 여인의 모습을 단순한 형태와 절제된 선으로 담아낸 채색 수채화를 중심으로 브론즈 돌조각 묵화 파스텔화등 6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 '구원의 모상'은 그가 직접 지었다. 이번전시에는 조각품밑에 깔린 두툼한 나무좌대도 눈길을 끈다. 꼼꼼한 그가 작품과 어울리게끔 설치한 좌대는 작품만큼이나 탐이난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안 할 수가 없어. 어제 한 작업이 궁금해서 새벽에 일어나 작업실로 가보곤 해. 피카소도 ‘붓을 집어드는 것은 쉬운데 놓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지…"
"나도 모르게 여성만 작업해왔지만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괴테의 말에 공감한다"는 그는 "여성적인 것은 폭력이 아니다, 수용 배려철학이 여성적이다. 다른말로 하면 사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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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인 것, 영원한 것' 30여년전 연 개인전때 철학선생이 써놓은 글귀를 최근 깨달았다는 원로조각가 최종태는 여성적인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했다. |
그가 다시 깨달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참새 모이를 준 게 20년이 됐어. 그런데 요즘 반으로 줄었어. 마당에 집을 짓고 근사하고 멋진 나무를 심었지. 그런데 옆 집에 자잘한 나무에는 새들이 많이 오는데, 우리집에는 안오는거여, 몇 달을 고민했지. 누군가 그러더라구, 참새들이 경치 좋다고 오냐~. 아, 그래서 모이를 마당에 뿌리기 시작했더니 40-50마리 참새들이 우르르 나타나는거야. 그런데 모이를 한 번 찍어먹고 사방을 둘러보는거야. 한 달 이상을 그러더라구, 무서워서 경계를 하는 거였지, 하지만 지금은 내가 나타나면 참새들이 신호하는 소리가 들려. 20여마리가 바로 나타나거든….하하하~"
11월 13일까지 서울 전시가 끝나면 11월 중순 대구 대백프라자와 수성아트피아에서도 전시가 이어진다.(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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