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종이 작가 함섭. 40여년간 한결같이 '닥종이 회화'를 선보이며 한국의 정체성을 찾아왔다.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닥나무 껍질을 흥에 겨워 던지고 찢고 두드리고, 굿판의 원색 깃발과도 같은 내 작품은 평생을 한국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매달려온 작업입니다."
'닥종이 작가'로 유명한 함섭이 올해 칠순을 맞아 한지 작가로서 보낸 40년 내공을 선보이고 있다.
'한지와 오색의 얼이 만들어내는 한마당'처럼 여전히 흥에 겨운 작가는 “작품에 기(氣)가 살아 있어야 한다"며 "여든이 넘으면 작품크기를 줄이겠지만 앞으로도 대작위주로 작품을 할 것"이라며 혈기왕성함을 자랑했다.
지난 11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함섭의 개인전은 100호 이상 대작 50여점이 걸렸다.울긋불긋한 오방색부터 흙내음이 물씬 풍기는 황톳빛까지 다채롭다.
질긴 닥나무와 40여년 인연동안 그는 '민족의 얼'을 찾았다.
한지를 물에 적신후 손으로 찢거나 짓이기는 작업은 마치 행위미술같기도 할 뿐 아니라 타악 연주같기도한 독특한 방법으로 작품이 탄생된다.
작품은 온 정성이 가득하다. 닥나무 껍질을 삶을 때도 산성도 75%인 양잿물 대신 볏집을 태운 잿물(산성도 35%)을 사용한다. 그래야만 작품 보존이 오랜 세월 가능해진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나의 작업방식은 우리나라 전통무용, 북이나 꽹과리 사물놀이와 같은 맥락일수도 있다"며 "내 작업에서 색과 면, 그리고 선들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고향의 풍요"라고 했다.
우리 전통과 얼이 스미고 베인 그의 작품은 알싸한 한약냄새가 난다. 닥나무 껍질과 한지를 화폭에 붙일때 사용한 접착제에 한약제인 천궁과 용뇌를 첨가했기 때문. 그림을 실내에 걸었을 때 보고 즐기고 감상은 물론 좋은 기분까지 느낄수 있도록 한 작가의 배려다.머리를 맑게 해주고 잡벌레를 멀리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춘천 출신인 작가는 1990년부터 전업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독특하고 한국적인 작품으로 작가는 국내외서 '아트페어 매진작가'로 유명세를 떨쳐왔다.
1998년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모두 팔린 뒤 수많은 아트페어에서 인기를 끌었고 지난 2007년 아르코 아트페어에서는 스페인 국왕부부가 극찬하며 그림을 사가 미술시장에서 그의 주가가 더욱 올라갔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을 떠나 강원도 춘천에 함섭 한지 아트 스튜디오를 열고 작업하고 있다.
“고향 춘천으로 온 이후로 그림이 단순해졌어요. 원래 작품이 전반적으로 밝고 색상도 강렬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오방색 대신 자연의 색을 추구하기 시작했어요. 춘천의 황톳빛 언덕에서 뛰놀던 어릴적 기억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거겠지요.”
김복영 미술평론가는 "고희를 맞아 선보인 이번 전시는 작가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며 "그의 작품은 그림의 바탕이란 무엇인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작가는 국내 전시와 함께 13일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카멜의 웨스트 브룩 갤러리에서도 한 달간 초대전을 연다.
“오늘이 내 남은 생애에서 내가 가장 젊은 날인 만큼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것도 부질없는 욕심이지요. 이제는 큰스님의 선문답같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함축적으로 보여줄 겁니다.” 전시는 20일까지.(02)580-1300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