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사 백마관 관루 앞에 멈춰선 취재팀의 차량, 창밖에 비친 방통사 입구 주변을 살펴 보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어렵사리 찾아왔는데 한창 공사 중인 방통사 앞의 상황을 보니 과연 입장이 가능할 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방통사 입구 앞 매표소 사무실에서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안내원의 표정이 밝아 졌다. 입구는 공사중이지만 다행히 입장은 가능하다고 취재팀에게 전한다.
방통사 입구인 백마관 관루를 통과해 제일 먼저 취재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남으로 청두(成都 당시의 익주)에서부터 북으로는 시안(西安 당시의 장안)에 이르는 금우도(金牛道)였다. 이 금우도는 기원전 300년경 당시 촉과 장안을 잇는 길이었다고 한다. 이 길은 과거 주요기간 통신망이었던 역참이 오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길을 역도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이길을 금우고역도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무기둥과 쇠사슬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긴 울타리 안에 보호되고 있는 좁은 폭의 고역도가 저 멀리 시안에서부터 청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금우도 양쪽으로 난 문 사이로 사람들이 바삐 오간다. 매점이 딸린 식당에서 관광을 마친듯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점원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건물 뒤로 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자 방통사를 견학 온 학생들의 묘 앞에서 한바탕 노래자랑을 벌이고 있었다. 한사람 한사람 방통의 묘 중앙에 나와 노래를 부르더니 이네 네명이 한조를 이루어 노래를 부른다. 지켜보는 일행들도 그 모습이 흥겨웠는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노래가 끝나자 학생들이 우르르 사당 안으로 몰려들어가면서 방금 전 펼쳐진 여흥의 시간이 마치 신기루인듯 여겨졌다.
◆ 낙봉파에서 죽음을 맞이한 어린 봉황
방통의 묘 좌우에는 작은 정자가 있고 그 안에 마치 옥살이를 하는 듯 두 마리의 말 조형물이 선 채로 갇혀 있었다. 소설 삼국지에 의하면 방통은 유비가 내준 백마를 타고 낙봉파(落鳳坡)를 넘다가 적의 기습을 받아 죽었다고 하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마치 그 죄를 지금까지도 말에게 추궁하기라도 하듯 말의 상을 꼼짝못하게 가둬놓은 것이다.
“적벽대전을 통해 형주를 차지한 유비에게 방통은 익주를 취하자는 전략을 제시합니다. 유비는 같은 종친인 유장의 익주를 취하는 것은 신의에 어긋난다며 발뺌을 하지만 결국 익주를 취하러 출병하고 말지요. 유비가 신의를 어긴다고 하면서 체면을 차리는 모양세을 갖춘 것이고, 그 이후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유장의 익주를 쳐들어간 것이지요.” 백마상을 바라보고 있던 취재팀에게 안내원은 부락산에서 들었던 유비와 유장의 이야기를 다시하번 상기 시켜 준다.
“유비가 익주를 취하러 진군하는 중 방통이 말에서 떨어지는 작은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러자 유비는 자신 타고있던 백마를 방통에게 내어줍니다. 계속해서 진군해 가다가 낙봉파(落鳳坡)라는 곳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적의 기습을 받습니다. 특히 백마를 탄 사람이 유비라고 생각한 익주의 군사들이 화살을 소나기처럼 쏘아댔고, 결국 이 낙봉파(落鳳坡)에서 방통은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와룡(臥龍) 즉 ‘엎드려 있는 용’이라고 하고, 방통은 봉추(鳳雛), ‘어린 봉황’이라고 묘사한다. 이 말은 두 사람이 총명하고 지혜로울 뿐 아니라, 훗날 대사를 맡아 커다란 업적을 이뤄낼 만한 인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어린 봉항은 세상에 나온지 얼마되지도 않아 봉황새가 떨어진다는 뜻의 지명인 낙봉파(落鳳坡)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양쪽 말상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방통의 묘에 가까이 다가간다. 돌로 만들어진 방통의 묘 앞 묘지석에는 한정후방사원지묘라고 적혀 있다. 사원은 방통의 자(字)이다. 학생들 무리가 사라진 자리 한 여학생만이 남아서 방통의 묘앞에서 정성스레 향을 사르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이 학생은 방통의 묘앞에서 향을 사르며 무엇을 기원햇을까? 무덤 속에서 이를 지켜보는 방통은 이 학생에게 어떠한 지혜를 깨우처 줬을까.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긴 채 우리는 다시 사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통사의 또 다른 볼거리는 방통사 사당입구를 지키는 듯이 앉아 있는 두 명의 노인들이다. 한분은 그냥 평범한 노인인 듯한데 또 다른 노인은 길게 늘어진 장발에 흰수염, 검은색 망토까지 두르고 있어 마치 도술을 펼치는 도인 같은 모습이다. 두 노인은 무릎위에 있는 악기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음악과 함께 창을 보여준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창을 한번 들어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일정관계로 아쉽게 다음으로 그 기회로 미루고 사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통의 사당은 두 채의 전당이 앞뒤로 나란히 위치해 있는데 처음 본 사당 서봉전(栖鳳展) 안에 들어서니 유리관 안에 들어가 있는 방통의 소상(塑像)이 보인다. 삼국지 속 방통은 너무나 못생긴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본 방통의 모습은 그리 미남은 아니지만 소설에서 묘사한 만큼 보기 싫은 비호감의 인물도 아니었다.
방통은 못생긴 외모 때문에 제갈량에 밀려 항상 조연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만일 방통의 외모가 이곳 방통사에서 본 소상(塑像) 정도의 외모였더라면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바탕으로 제갈량보다 먼저 출세할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유전적으로 못생긴 외모를 지닌 방통은 그의 경쟁자인 제갈량과 늘 비교가 된다. 형주의 권력자 집안의 딸에게 장가를 가고 훗날 촉나라의 승상 자리까지 오른 제갈량에 비해 방통은 외모의 장애물에 막혀서 결혼이고, 출세고 모든게 뒷쳐졌다.
“소설 삼국지에서 방통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적벽대전 이후 형주를 취한 유비가 드디어 군웅의 면모를 갖춰갈 때쯤입니다. 이때 방통은 제갈량의 추천서를 들고 유비 진영을 찾았으나 제갈량의 추천서를 내놓지 않고 면접을 봅니다. 유비는 외모만 훝어본 뒤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방통에게 조그만 마을의 현령 자리를 내줍니다.” 안내원이 방통의 못생긴 외모 때문에 일어난 일화를 들려준다.
“현령으로 부임한 방통은 매일 술만 먹고 업무를 게을리 하는데 이를 알게 된 장비가 현장을 찾아가서 호통을 치게 됩니다. 그러자 방통이 “이 작은 마을의 일이야 한나절이면 다 처리할 수 있다”고 반박하죠. 그날 장비가 보는 앞에서 순식간에 밀린 일을 다 처리하는 능력을 발휘하자 장비는 그 모습에 감탄해 이 모든 사실을 유비에게 보고합니다. 유비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면서 방통을 본대로 데려가고 나중에는 제갈량과 동급인 군사중랑장에 앉힙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듣는 도중 나도 모르게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 때문에 인물의 능력이나 사람 됨됨이를 보지 못하는 인간세상의 그릇된 행태가 180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변치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와룡봉추 둘 중 하나만 얻으면 천하를 지배한다
또 다른 사당 용봉이사전(龍鳳二師展)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제갈량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통의 소상(韶像)이 안치돼있다.
와룡봉추(臥龍鳳雛) '엎드려 있는 용'과 '세끼 봉황' 둘 중 하나만 얻더라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소설 삼국지에서 최고의 책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기 이전, 아직까지도 당당한 군웅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던 시절, 유비는 유표의 처남인 채모의 암살 기도에 걸렸다가 겨우 탈출에 성공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어렵사리 채모의 추격을 벗어나 형주의 명사 사마휘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사마휘는 와룡과 봉추 둘 가운데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는 말을 전한다. 관우, 장비 등 무예가 뛰어난 무장은 있었으나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참모가 없는 유비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사마휘는 자신의 제자 가운데 가장 총명한 두 사람을 그에게 추천한 것이다.
방통과 제갈량 두 사람의 소상(韶像)을 뒤로하고 사당 밖으로 나온다. 사당 밖에는 커다란 장백나무와 사당을 지키는 듯 서있는 맹수의 상이 양옆으로 놓여 있었다. 흐린 하늘아래 돌을 깔아 만든 길 사이로 초록빛 이끼와 풀잎이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당을 나와 왼쪽으로 길을 걸으니 커다란 비각 십여 개가 기억자 모양으로 줄을 이루며 서있다. 비각 뒤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고 길을 따라 걷다보니 작은 누각이 방통의 묘와 같이 쓸쓸하고 처연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누각 앞에서는 방통사의 입구 백마관을 지났을 때 처음보았던 고역도가 이어져 있었다. 고역도를 따라 들어왔던 백마관 입구 밖으로 다시 빠져나왔다. 공사장 인부들이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자리를 비운 백마관 입구는 갑자기 시간이 정지한 듯 적막감이 감돌았다.
낙봉파. 지명이 이미 그의 죽음을 예고했다는 이곳에 형주의 명사 사마휘가 직접 가르쳤고,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추천한 천재, 그러나 외모가 너무 추해서 손권도 유비도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비운의 천재 방통이 잠들어 있다. 만일 방통이 죽지 않고 제갈량과 함께 계속해서 유비를 보좌했더라면, 유비의 촉한이 사마휘의 말처럼 삼국을 통일하고 천하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서서히 우리 취재진은 방통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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