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 수익성 및 건전성을 위기 이전 수준으로 개선했던 금융권은 올해부터 또 다시 허리띠를 바짝 조여야 할 상황이다.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은 외화 유동성 확보와 여신 건전성 관리다.
유로존 재정위기로 안전자산인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해외에서 자금을 차입하기가 어려워진데다 국내 경기침체로 기업과 가계 대출의 부실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 달러 수급에 만전 기해야
금융당국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 수준의 위기가 다시 도래해도 석달은 끄떡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만기 1년 이상 중장기 외화 자금의 차환율(만기연장비율)을 0%로 가정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18개 은행 모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외화로 3개월 이상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단기차입 차환율과 중장기차입 차환율은 각각 100%와 150% 수준이었다.
차환율이 100%를 웃돈다는 것은 만기가 도래한 자금을 갚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난해 상황이다.
김정일 사후 북한 정권이 조기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거나 유럽 위기가 심화할 경우 차입 여건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일본 엔화 표시 채권인 사무라이본드가 많이 발행되면서 외화 조달에 숨통을 틔워줬지만 내년에는 북한발 악재 등으로 여의치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국내 은행의 유럽계 자금 의존도가 과거보다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유럽 위기가 심화할 경우 자금 이탈과 신용경색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은행을 비롯한 모든 금융회사들이 비상체제를 가동하면서 외화 유동성 수준과 차입 여건 변화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가계·기업대출 부실화 차단 주력해야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가계대출 증가세는 확연히 둔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 대출의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월 0.90%에서 10월에는 1.28%로 오름세를 타고 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7%대로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0.2%포인트 가량 올랐다.
카드사와 저축은행, 캐피탈사, 보험사, 대부업체 등 비은행권 연체율은 더욱 심각하다.
가계대출 잔액인 100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연체율 관리에 실패할 경우 가뜩이나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는 금융권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기업대출 쪽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초 1.4%대에서 연말에는 1.7%대로 수직 상승했다. 특히 중소기업 연체율은 2%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자를 제대로 못 갚는 연체 수준을 넘어 대출 자체가 부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말 중소기업 342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올해 예상되는 경영 애로사항 중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선택한 기업이 무려 36%에 달했다.
은행 대출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응답은 63% 수준이었다.
금융당국은 1분기 중 창업·중소기업 금융환경 혁신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공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철저한 기업 평가를 거쳐 한계기업은 퇴출시키고 회생 가능한 기업에 자금을 집중 지원하는 구조조정 작업이 다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절하게 진행됐던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재연될 것”이라며 “기업 부실을 얼마나 털어내느냐에 따라 금융권 성적표도 갈릴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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