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삼국지 기행 35 허난성편>3-1. 조조, 천하의 인재를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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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0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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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조용성 특파원) 허난(河南)성 쉬창(허창, 許昌) 시내 중심가, 웨이우디광창(위무제광장, 魏武帝廣場) 동쪽에 위치한 차오청샹푸(조승상부, 曺丞相府). 한낱 한 명의 지방제후인 조조의 근거지였을 뿐이었던 허창은 196년 조조가 이각(李傕),곽사(郭汜)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헌제(獻帝)를 호위해 오면서 한(漢)나라의 수도가 됐다. 그리고 조조는 승상에 올라 신분이 급상승했으며, 그가 살던 저택 역시 승상부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이 곳 승상부에서 조조는 한나라의 승상으로서 군사전략을 논의하고 국가의 대사를 처리했다. 위나라 패업의 기초가 된 둔전령(屯田令)과 구현령(求賢令)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했다. 이 승상부는 한나라가 멸망하고 위나라가 건국하면서 왕부로 명칭이 바뀐다.

허난성 허창시 조승상부에 있는 죽간을 형상화한 구조물들. 죽간에는 조조가 지은 시들이 빼곡히 적혀있고 죽간 옆의 스위치를 누르면 시낭송이 들린다.


허난성 허창시의 조승상부 입구에 있는 석조 대문의 모습. 멀리 조조의 석조동상이 보인다.


허창시의 조승상부는 현제 위나라 문화를 주제로 만들어 놓은 최고의 유적지자 기념관이다. 이 곳을 기념관으로 다시 복원하는데 2억위안이 투자됐다고 한다. 삼국지 기행에서, 그리고 허창여행에서 빠져서는 안될 명승지다.

승상부 입구는 석조 조각으로 구성돼 있다. 크게 세개의 문이 있었으며, 문만 있을 뿐 담은 없어 개방감을 높였다. 중앙의 큰 문에는 승상부원(丞相府苑)이라는 네글자가 써 있었으며 양쪽 문에는 각각 치세(治世, 세상을 다스리다)와 안방(安邦, 변방을 평안케 하다)이라고 두글자씩 쓰여 있었다.

허난성 허창시 조승상부에 들어서면 거대한 조조의 조각상이 관광객을 맞는다. 육중하지만 선이 살아있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조각에서 조조의 현실적인 성품과 높은 포부를 읽을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조조의 석상이 취재팀을 맞았다. 왼손에 보검을 쥔 채 오른 손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날카로운 눈매에 번듯한 코와 꾹 다문 입술에서 그의 강인함이 읽혀졌다. 석상은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면서도 간결하고 깔끔해 조조의 실사구시적인 개성을 드러내 보였다. 이 석상은 중국 최고의 예술대학인 중앙미술학원의 조각가들이 조각했다.

허난성 허창시에 있는 조승상부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보이는 '관창해'라는 제목의 청동 벽화. 조조가 동북지역의 오환족을 섬멸한 후 허베이성 친황다오 갈석산 해변가에 도착해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석상을 지나쳐 조승상부 안에 들어가면 안쪽 벽에 관창해(觀滄海)라는 제목의 조각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조조가 207년 허베이(河北)성 친황다오(秦皇島) 제스산(碣石山, 갈석산) 산자락 해변에서 창해를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청동판에 한땀한땀 힘차게 새겨 넣은 모습에서 조조의 천하통일에 대한 굳은 의지가 읽혀진다. 갈석산 바닷가는 진시황과 한무제가 서 있던 곳이기도 하다. 조조는 이 곳에서 “동림갈석, 이관창해(東臨碣石, 以觀滄海. 동쪽 갈석산에 와 창해를 바라보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관창해(觀滄海)’라는 시를 지었다.

승상부안으로 20m정도 더 들어가 구현당(求賢堂)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조조의 폭넓은 인재등용 정책을 기리기 위해 조성해 놓은 곳이다. 조조는 오직 능력에 따라 사람을 썼으며, 일단 기용하면 과거의 잘못을 묻지 않았고,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혼란한 정국에서 철새행보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시대의 지식인들의 포용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지만 그의 이 같은 인재등용정책에 힘입어 조조에게 천하의 인재들이 구름떼같이 몰려들었다.

위나라의 문인으로는 순욱, 순유, 가후, 곽가, 만총, 사마의, 유엽, 정욱, 종회, 진군, 진림 등을 꼽을 수 있고, 무장으로는 하후돈, 하후연, 허저, 전위, 장료, 장합, 이전, 우금, 악진, 서황, 방덕, 조인, 조진, 조홍, 조휴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무수한 문무관료들이 조조를 떠받치고 있었다.

훗날 제갈량(諸葛亮)은 촉한의 승상에 올라선 후에도 함께 공부했던 수재들이 아직까지도 위나라에서 대단찮은 관직에 머물러 있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이 아직도 낮은 벼슬자리에 있다니 도대체 위에는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있단 말인가”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조승상부 구현당에는 신하 네명과의 인연을 들어 조조의 인재관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원소의 휘하에 있던 순욱을 맞으면서 조조가 “오 나의 장자방이여”라며 환대하는 그림이 눈에 띈다. 또 관우를 붙잡아 두기 위해 각고의 정성을 쏟은 후 떠나는 관우를 붙잡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그림과 함께 크게 실려있다. 구현당의 벽에는 조조가 작성했던 구현령과 구현언 등이 잘 정리돼 있었다.

조조가 지은 시 중 최고로 꼽히는 단가행(短歌行)의 주제도 인재등용이었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지었다고 하는 이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對酒當歌, 人生幾何. (대주당가, 인생기하. 술을 앞에 두고 노래를 들으니 인생이 무상하네.)
譬如朝露, 去日苦多. (비여조로, 거일고다. 아침이슬 같으리니, 지난날의 많은 고통.)
慨當以慷, 憂思難忘. (개당이강, 우사난망. 슬퍼하며 탄식해도, 근심을 잊기 어렵구나.)
何以解憂, 唯有杜康. (하이해우, 유유두강. 무엇으로 근심 풀까, 그건 오직 술뿐일세.)
중략
月明星稀, 鳥鵲南飛. (월명성희, 오작남비.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마귀 남으로 나네.)
繞樹三匝, 何枝可依. (요수삼잡, 하지가의. 나무를 서너 차례 돌아도 앉을 가지 없어라.)
山不厭高, 海不厭深. (산불염고, 해불염심. 산은 높음에, 바다는 깊음에 만족하지 않네.)
周公吐哺, 天下歸心. (주공토포, 천하귀심. 주공처럼 인재를 대한다면 민심이 귀의하리.)

허난성 허창에 위치해 있는 조승상부의 의사청에는 당시 영웅들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조조를 가운데에 두고 문무대신들이 열띈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다채롭다.


발걸음을 의사청(議事廳)로 옮겼다. 의사청에는 밀랍인형으로 만든 인물상들이 조조를 중심으로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이 재현돼 있다. 신하로는 문신과 무신들이 활발하게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다. 밀랍인형은 상당히 정교했다. 특히 애꾸눈인 하후돈의 사실적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스스로가 뛰어난 병법가였던 조조는 ‘운주유악, 결승천리(運籌帷幄, 決勝千里. 장막에서의 논의가 천리 밖 승패를 결정짓는다)’라는 말로 전략을 중요시 여겼다.

조승상부의 후원에는 경극에 사용되는 삼국지 주요 인물들의 가면이 보기좋게 배열돼 있다.


조승상부 후원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주요인물들의 경극탈이 커다란 크기로 보기 좋게 줄지어 있었다. 중국인에게 하얀색은 교활함을 뜻한다. 이 곳 조승상부마저 조조의 탈을 백색으로 표현해 놓았다. 관우의 탈은 단연 빨간색이다.

경극탈 옆의 정원으로 가면 조조가 지은 시들을 적어놓은 대형 죽간 형상의 구조물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시들을 시원시원한 활자체로 조각해 놓았으며, 측면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면 중국 고전음악과 함께 부드러운 음성의 시낭송이 흘러나온다. 조조가 천하통일의 계책을 마련하던 승상부, 이 곳에서 현대인들은 조조의 호방한 인재정책, 과감한 정치술, 뛰어난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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