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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삼국지기행 41 허난성편> 9-2. 삼국지 8대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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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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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조용성 특파원) 허난(河南)성 쉬창(許昌) 시내에 있는 조승상부(曺承相府) 본건물 2층에는 시부루(詩賦樓)가 위치해 있다. 이 시부루 한 켠에는 삼국지 8대미녀에 대한 설명과 그림들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삼국지 8대미녀는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지은 이후에 민간에서 만들어졌을 뿐 누가 정한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삼국지 8대미녀중 두번째와 세번째는 대교와 소교가 꼽혔다. 언니인 대교는 손책에게, 동생인 소교는 주유에게 시집갔다.


첫번째 미녀로는 단연 초선(貂蟬)이 꼽힌다. 초선은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왕윤(王允)의 수양딸로 등장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사이를 이간질시키는 데 성공한다. 동탁의 폭정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초선의 희생은 천하의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동탁이 사망한 후 여포를 따라 전쟁터를 누비다가 여포와 함께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다.

두번째와 세번째 미녀는 대교(大喬)와 소교(小喬)가 꼽혔다. 함께 이교(二喬)라고도 불린다. 언니 대교는 오(吳)의 손책(孫策)과, 동생 소교는 오나라의 장수 주유(周瑜)와 결혼을 했다. 제갈량(諸葛亮)이 주유의 화를 돋워 오나라를 적벽(赤壁)대전에 참전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조(曹操)가 지은 시 ‘동작대부’에 유독 유부녀를 좋아했던 조조가 대교와 소교를 탐하려한다는 내용을 집어넣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삼국지 8대미녀 중 첫번째는 단연 초선이 꼽혔다. 초선은 중국 4대미인이기도 하다.


문소황후(文昭皇后) 견씨(甄氏)가 네번째였다. 견씨는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의 정비로 조비가 황제에 오르자 황후가 되었다. 견씨는 원래 원소(袁紹)의 차남인 원희(袁熙)의 아내였다. 조조가 기주(冀州)성을 함락하자 조비가 먼저 원소의 저택을 기습해 견씨를 보고 아내로 삼았다. 삼국지연의는 조조와 조식(曺植)이 견씨를 보고 모두 아까워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섯번째는 손부인(孫夫人)이었다. 손견(孫堅)의 딸이며, 손책, 손권(孫權)의 이복 여동생이자 유비(劉備)의 부인이다. 손상향(孫尙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적벽대전 이후 손권이 유비를 동오로 꾀어내기 위해 손부인과의 중매를 섰다. 이후 유비가 서천(西川)으로 출정을 나서자 손부인은 동오로 돌아가 버린다.

축융부인(祝融婦人)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가공 인물로, 맹획(孟獲)의 아내다. 중국 신화의 불의 신이자 남쪽의 신인 축융(祝融)의 후예다. 무예가 출중하며 단도를 잘 던지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제갈량(諸葛亮)에 생포됐다가 풀려난 후 맹획과 함께 제갈량에 항복한다.

헌목황후(獻穆皇后) 조절(曹節)이 일곱번째다. 조조의 딸로 헌제(獻帝)에게 시집가 후궁이 되었고, 복황후(伏皇后)가 죽은 뒤 황후에 올랐다. 한의 마지막 황후다. 마지막 미녀는 채염(蔡琰)이다. 채문희(文姬)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후한의 중신 채옹(蔡邕)의 딸이다. 시재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을 지었다고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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