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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삼국지 기행 산시성 42> 1-1. 한중 석문13품 - 漢나라의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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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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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최미화 기자) 나관중의 ‘삼국연의’에는 수많은 영웅 호걸이 등장한다. 특히 단연 돋보이는 영웅은 촉나라 재상 제갈량. 그는 시공을 초월한 뛰어난 지략과 재능, 그리고 충성심으로 오늘날 후대에까지 널리 칭송 받고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무후사(武侯祠)에 와서 제갈량을 추모하며 지은 '촉상(蜀相)’이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는 지금까지도 제갈량을 노래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丞相祠堂何處尋 승상의 사당을 어느 곳에서 찾을까
錦官城外柏森森 금관성 밖 잣나무 울창한 곳일세
映階碧草自春色 계단에 비친 푸른 풀은 절로 봄빛 가득하고
隔葉黃鸝空好音 나뭇잎 사이 꾀꼬리 울음소리는 무심하네
三顧頻煩天下計 삼고초려는 천하를 위한 헤아림이요
兩朝開濟老臣心 두왕을 섬긴 노신의 충성스런 마음이여.
出師未捷身先死 출정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뜨니
長使英雄淚滿襟 길이 후세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로 옷깃을 적시게 한다


취재팀은 인천 공항에서 3시간을 날아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도착, 삼국지 기행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공항에서 나온 취재진은 첫 목적지인 한중(漢中)으로 향했다.

시안에서 무려 500km 곳에 위치한 한중은 제갈량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한중은 과거 제갈량이 북벌 공략을 위해 8년 간 머문 곳이자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곳이다. 제갈량은 북벌 공략으로 그 동안 쌓인 피로가 병이 돼 건강이 악화돼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유언대로 한중의 정군산(定軍山) 기슭에 묻힌다. 지금도 중국에는 매년 수 십만명의 참배객이 이곳에 있는 제갈량의 묘를 찾아 추모를 올린다.

한중은 ‘한나라 왕실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기원전 206년인 진(秦) 나라 말기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자웅을 겨루던 시절 항우는 유방을 산시성 홍문으로 초대해 연회를 베푼다. 겉모습만 연회지 실제론 항우가 유방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함정이었다. 유방은 부하 덕분에 목숨을 건져 달아나고 그로부터 얼마 후 항우에 의해 유방은 한왕에 봉해져 황무지나 다름없는 한중 지역으로 내쳐졌다.

실망하고 있던 유방에게 부하 소하(蕭何)가 한신(韓信)을 소개시켜 주니 유방은 한신의 도움으로 항우와의 결전에서 승리하고 결국 천하를 손에 쥔다.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한나라를 세운다.

한중이 이처럼 한나라와 깊은 연을 맺고 있기에 삼국시기 유비는 한중을 공략했고, 제갈량은 바로 이곳 한중에서 한나라 왕실을 부흥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심혈을 쏟았다.

한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차창 밖으로 듬성듬성 들판이 펼쳐져 있다. 12월 겨울철 쌀쌀한 날씨에도 들판에 청보리가 억세게 자라고 있다. 들판 너머 희뿌연 안개 사이로 이따금씩 작은 마을이 보이기도 한다. 고층 빌딩 숲에 둘러싸인 서울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이곳에 오니 마치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약 2000년 전 곳이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와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던 전쟁터 한 가운데라고 생각하니 세월의 무상함에 절로 탄식이 나온다.

차량은 어느 덧 시한(西漢) 고속도로 친링(秦嶺)산 구간을 지나고 있었다. 도로 양 옆으로 험한 산세가 죽 이어지니 한국의 설악산을 방불케 한다.

시한(시안~한중) 고속도로에 있는 치무핑 친링 휴게소 근처 '화하용맥' 조각품 중 제갈량을 조각해 놓은 상.


취재진은 치무핑(七畝坪) 친링 휴게소에 잠깐 들러 쉬어가기로 했다. 차에서 내리니 도로변의 거대한 조각상이 취재진의 눈에 들어온다. ‘화하용맥(華夏龍脉)’조각이다. 길이 260m, 높이 7m의 거대한 조각에는 중국 오천 년 역사 속의 유명한 고사 18개가 새겨져 있으니 중국의 장대한 역사의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가장 인상 깊은 조각상은 역시나 제갈량. 한 손에 깃털 부채를 든 제갈량의 얼굴에서는 기품이 철철 넘치고 눈에는 총기가 도니 가히 13억 중국인을 사로잡은 우상인 듯싶다.

도로 곳곳에서 차량들의 정체가 이어진 탓에 취재진은 5시간이나 걸려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때나 되야 한중에 도착했다.

삼국시대 한중은 위촉 양국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주요 격전지였다. 노장 황충은 한중 정군산에서 조조의 부하 하후연을 단칼에 베고, 조자룡은 조조군을 격파해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유방이 한왕으로 있을 당시 머물렀던 궁전 유적지 고한대 입구. 지금은 한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튿날 아침 취재진은 아침부터 서둘러 한중 박물관으로 향했다. 한중 시내 중심가에 들어서니 꽤 오래돼 보이는 듯한 건축물이 하나 눈에 띈다. 바로 고한대(古漢臺)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옛 한나라 유적’으로 과거 한왕에 봉해진 유방이 머물던 왕궁이다. 지금은 이곳이 바로 한중 박물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한중박물관 내부 전경. 청나라 시대 정원양식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


지난 1958년 11월 9일 세워진 한중 박물관은 과거 한나라 시대 건축물 양식으로 지어졌다. 지난 70년대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보수작업을 진행해 명청 시대 건축물 위주의 정원 형식으로 꾸며놓았다. 박물관 안에는 한나라 때부터 이곳 한중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 고대 명인들의 시화, 종교 예술품, 혁명 유적물 등 진귀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한중박물관은 중국 제1차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로 꼽힌 주요 역사유적지다.


그 중 석문(石門) 13품, 포사잔도(褒斜棧道) 모형은 박물관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보물이자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석각 13폭이 전지돼 있는 한중박물관 석문13품 전시실 입구.


취재진은 우선 석문13품 전시실에 들어섰다. 전시실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석각 13폭이 전시돼 있다. 석각 13폭은 본래 고대 파촉(巴蜀)과 한중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로인 포사잔도 남쪽에 있는 석문 안팎에 남아있던 것이다. 과거 이곳 잔도를 지나가던 이름 난 문인들은 계곡 절벽에 수 많은 작품을 남겼다.

훗날 저수지를 개발하면서 이 일대가 물에 잠기게 되자 총 178폭 석각 중 중 13폭만 간신히 건져 한중 박물관에 보관해 놓은 것. 이들 석각은 과거 한나라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유물이다.

13폭의 석각마다 제각각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하나인 ‘옥분(玉盆)’은 유방의 책사 장량(張良)이 남긴 작품이다. 안내원은 “당시 장량이 한중에서 공무를 보던 당시 포하의 계곡을 지나며 백색 빛의 돌을 발견한다. 돌이 마치 옥으로 빚어낸 화분과 같다 하여 그 돌 위에 ‘옥분’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석문13품 중 작품 곤설'.조조가 남긴 유일한 서예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하나 취재진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조조가 새겼다는 ‘곤설(袞雪)’이다. 조조는 일생 동안 한중을 두 차례 찾았다. 첫 번째는 215년 오두미도(五斗米道)와 장로를 토벌하기 위해 한중을 공략한 것이며, 두 번째는 219년 유비와의 한중 쟁탈전을 벌일 때다.

줄곧 수세에 있던 유비가 한중의 유리한 지형을 점령해 우위를 확보하면서 조조는 유비를 상대로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당시 조조는 포수의 흘러내려오는 물결이 바위에 부딪혀 사방에 흩어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물방울이 마치 눈처럼 흩어져 내리는 듯 하다 하여 그 자리에서 ‘곤설’이라는 두 글자를 썼다.

이를 바라 보던 한 시종이 “‘곤(袞)’자에 삼수변(水)이 빠졌다” 아뢰자 조조는 크게 웃으며 “여기에 이처럼 많은 물이 있지 않은가”하고 강물을 가리켰다고 전해지니 많은 이들이 조조의 재치에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유비와의 전쟁에서 수세에 몰려 힘든 순간에도 이처럼 여유롭고 호기로운 모습을 보이니 가히 천하를 호령할 만한 영웅이 아닌가 싶다.조조의 영웅적 기개만큼이나 필체도 매끄럽고 시원시원하다.

일본의 저명한 한 서예가는 (種谷扇舟)는 “한중의 석문은 일본의 스승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석문 벼랑에 새겨진 작품들, ‘석문송(石門頌)’ ‘양해표기(杨淮表記)’ ‘석문명(石門銘)’ 등은 일본 초중교 교과서에까지 실려있을 정도다.

석문13품 전시실 맞은 편에는 포사잔도 전시실이 있다. 포사잔도의 구체적인 모습을 생동감있게 전시해놓았다. 안내원은 “포사잔도의 총길이는 235km로 이것을 만드는 데에만 76만명의 인력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중국 만리장성, 대운하에 이어 중국 3대 기적이라 불리는 포사잔도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취재진의 마음은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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