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회 전시마다 변화된 작품을 선보이는 원문자 화백. 이번 전시에는 한지부조화에서 진화된 릴리프 콜라주작업을 발표한다./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또 변했다. 오글오글 드글드글 모인 작은 순지 조각들이 진동한다. 예리하게 면을 구획하던 이전의 평면구성과는 다르다.
얼마나 견뎌냈을까. 억겁이 빚어낸 시간은 몇겹씩 쌓아 올리는 릴리프 형식의 콜라주작업으로 탄생했다.
흑백의 농담의 차이로 풍부한 양감으로 독특한 화면을 구축한 작업을 두고 미술 평론가 오광수는 "마치 대양의 수면처럼 작은 물결들이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가 하면 꽃밭에 모여드는 나비떼와 같이 파닥이는 작은 생명체의 황홀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거나 또는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가 일시에 만개한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3년동안 작업에만 열중했다는 한국화가 원문자(68)화백의 작품이다.
원 화백은 그동안 변신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용상 실험에만 치우쳤던 지금까지 한국화와 달리 평면적 종이작업을 입체화시켜 실업적인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해왔다.
◆초기 화조화에서 부조 추상작품까지
원화백은 이화여대 미대 재학당시인 3학년때 문화공보부 주최 신인 예술상에서 수석상을 차지할 만큼 꽃과 새를 독특한 감성으로 그린 화조화로 인정받았다.
이후 1970년 19회 국전 차석상인 국회의장상, 1976년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매회 국전에서 각광 받았다. 그러다 1989년 한지의 물성을 활용한 추상의 세계로 들어섰다. 이후 20년 동안 자신의 양식을 고집해 왔으며 스스로 이념의 고수를 잘 반영해 전통 화조화의 영역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영역을 지켜왔다.
초기 추상작품은 대부분 콜라주로 스티로폼을 조각한 위에 물에 풀은 한지를 부은 다음 떼어내어 그 위에 다시 착색을 하는 부조작품이었다.
이후 2001년에는 한지를 세워서 붙이고 그 위에 착색을 하는 방법을 병행 하여 조각적인 부조작품을 발표했다. 2005년부터는 한지 바탕 위의 순지에 먹을 입혀 자르고 구기고 다시 펴서 여러 겹으로 붙이는 과정을 시도 하였으며 2008년 에는 순지를 가늘게 잘라 물을 묻혀 형태에 따라 입체적으로 붙여가는 작업으로 이때 배경은 선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고 반 구상적인 요소가 많은 작업이었다.
![]() |
원문자 화백의 13회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선화랑 전시장면./사진=박현주기자 |
◆평면위에 종이를 몇겹씩 쌓아올린 릴리프 신작
2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막한 원문자 개인전은 작가의 한국화에 대한 집념이 엿보인다.
릴리프 회화 또는 회화적 릴리프를 추구해오던 작업은 또다시 실험적으로 변했다. 그동안 한지를 물에 풀어 한지 풀을 만들어 이를 일정한 형태로 떠낸다는 것은 한지의 물성화를 극대화해 한지가 지닌 내면을 꺼내었다면 이번 전시에는 한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구겨진 작은 순지조각들을 몇겹씩 쌓아올린 콜라주 30여점을 선보인다.
겹겹이 쌓인 구겨진 순지의 조각들은 간결하면서도 파동을 치며 깊은 내면의 울림을 전한다.
원화백은 “지난 작업보다 단순해졌지만, 오히려 더 힘들었다”고 했다. 한 작업을 하는데 보통 한 달 가까이 걸린다. 순지를 조각내 여러 겹 붙이는 작업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추상의 세계는 끝이없다. 고민도 많아야 하고 자기를 들볶아야 하죠. 자신과의 투쟁이기도 하고요.”
원 화백은 "이번 작품에는 내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소리를 담았다고 했다.
“마음의 소리는 나만이 아는 소리다. 침묵의 폐쇄성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서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붙이는 것을 통해 내 마음의 소리가 무엇인지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작업하지요”
이번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원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순수한 가능성과 침묵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원은 한정되지 않는 무일 세계로 불변하는 본질을 지니고 끊임없는 변화가 이뤄진다.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적이고 영원적인 상태를 나타내니까요.”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순지의 파편들. 수묵과 한지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전통한국화 지필묵의 새로운 시각적 모색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 화백은 "한국화가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는 현시대가 안타깝다"며 "나만이라도 한국화를 지키고 이어나가겠다는 각오로 이번 작품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따뜻하고 순결하고 순수한 한지는 그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입체적인 작품은 밖으로 돌출하는 부분을 통해 규격 안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려는 마음, 나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제 한지 작업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전시는 16일까지.(02)734-0458
![]() |
사유공간 160x130cm 한지 순지 먹 2012. |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