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천 정부 종합청사 내 기획재정부 4층 복도는 낯선(?) 사람들로 북적인다.
예산시즌이 돌입하면서 재정부 건물은 이른 아침부터 예산을 더 따내려는 지방자치단체, 부처 공무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더 많은 예산을 따오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움직이는 것이다.
1년 중 예산실이 가장 바쁜 시절이 요즘이다. 각 부처가 지난 6월 말 제출한 예산요구서를 검토해 정부 예산안을 편성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7월 중순부터다.
재정부 예산당국자가 바쁘다는 이유로 면담이 이뤄지지 않으면, 핵심 간부들은 재정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무심코 출근하는 당국자의 옷소매를 붙들기도 하고, 휴일을 마다않고 불쑥 찾아가 현안사업을 조목조목 설명하기를 수 차례 반복한다.
현안사업 실·국장과 과·팀장들도 재정부 예산실을 수없이 방문해 타당성 논리를 설명하고 예산반영을 부탁하는 등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예산시즌이 시작되면 예산과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의 행태를 꼬집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정부 부처에선 ‘따고 보는 것’이고, 예산실에선 ‘깎고 보는 것’이고, 국회에선 ‘심의하고 보는 것’이고, 집행부서에선 ‘쓰고 보는 것’이라는 말이다.
올해 부처별 예산 요구안은 총 346조6000억원(기금 포함)으로 엄청난 수준이다. 각 부처가 최선을 다해 깎은 예산이라지만 올해 예산 대비 21조2000억원(6.5%) 늘어난 규모다.
증가 폭으로는 복지 분야(4조9000억원 증액)가 가장 크다. 요구안대로만 편성한다면 내년 복지 관련 예산은 총 97조5000억원으로 총예산(요구안 기준)의 28%에 달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4대 연금 등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돈만 48조4000억원이다. 교육 예산도 지방교육교부금 등이 늘면서 10%를 더 달라는 요구가 접수돼 있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에 비해 예산실과 각 부처 공무원, 지자체의 설전이 더 치열해질 분위기다. 내년에는 반드시 ‘균형 재정’을 하겠다는 재정부 방침 때문에 정부 각 부처 예산한도액(실링)이 줄어들게 돼 있다. 중기 재정 계획에 따른 내년 예산 규모는 341조9000억원. 원칙대로 하면 각 부처 요구액에서 4조7000억원을 줄여야 한다.
실제 예산실 관계자들은 올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싸움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에 손을 터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예산안이 최종 통과될 때까지 의원들을 대상으로 재정 건전성 사수 의지를 최대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역 연고권을 내세워 예산실 공무원에게 읍소하거나 지자체장과 국회의원으로 꾸려진 예산 확보 전담반이 과천을 방문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들은 이렇게 한여름을 과천에서 보낸 뒤 관악산이 붉게 물드는 10월이 되면 여의도 국회로 몰리기 시작한다.
지역 국회의원들은 물론 국회 예결특위 입법조사관 및 당 예결위 전문위원 등을 찾아 정부예산안에 포함된 사업은 예산을 증액시키기 위해서, 포함되지 않은 사업은 신규로 추가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설명하고 건의하기 위해서다.
예산실 앞에서 만난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여러 여건상 예산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지만 일부 사업의 경우 삭감 폭이 너무 커 당혹스럽다”며 “첫 단추가 잘 꿰어져야 순탄하게 편성될 수 있는 만큼 남은 기간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펼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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