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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고 이만익화백과 올림픽 /박현주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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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8-1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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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과 열대야로 들썩이던 지난 9일 새벽. 그날은 ‘코피 투혼’이 빛난 태권도 선수 이대훈이 은메달을 목에 건 시간이었다. 아쉬움과 감동이 뒤섞이던 그날, 서울 한 병원에선 일흔넷의 원로화가가 뜨겁게 달아오른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

지병인 천식때문이었다. 지난 4월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건강이 악화됐던 그는 그날 새벽, 아파트가 흔들릴 것처럼 터지는 함성소리가 이어지던 날들을 뒤로 하고 눈을 감았다. ‘한민족의 자화상을 가장 한국적으로 그리는 화가’라고 불리던 서양화가 이만익화백이다.

올림픽과는 운명일까. 그는 24년전 88서울올림픽 역사를 장식하며 함성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낸 장본인이다. 당시 거대한 매스게임등 한국의 색으로 한국문화 위상을 알린 미술감독이었다.

박수근이 ’국민화가‘라면 이화백은 ’한국적 화가‘다. 그림은 단순하다.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한국 그림‘ ’좋은 그림‘이라고 느낄 정도다. 힘있는 굵은 테두리와 오방색속에 있는 동글동글한 인물들은 정겹고 편안하다.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그는 화단의 인기작가로 군림했지만멈추지 않았다.

한민족의 정서가 가득한 작품은 세계 문화시장의 아이콘이 됐다. 뮤지컬‘명성황후’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에 그의 작품이 사용됐고 중학교 교과서 표지로 소설 전집 삽화로도 실렸다. 환갑도 훨씬 지난 나이었다.

’화생화사(畵生畵死)‘였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천식으로 몸이 불편했지만 붓을 놓진 않았다.원칙과 틀을깨고 자유로운 ’유구무구(有構無構)‘의 경지에 도달했다. 부처도 예수도 그의 붓길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별세하기전까지 해마다 개인전을 열어온 그는 화업 60여년간 2000점을 쏟아냈다.

고향 황해도를 두고 나와 8살때 서울의 한 초등학교 2학년부터 잡은 붓은 인생의 이정표가 됐다. 경기중학교 3학년 때 국전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하면서 유명세를 치뤘다. 당시‘중학생 국전 수상’이 논란이 돼 ‘대학 3학년 이상 출품가능’이란 조항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미술천재‘ 꼬리표가 붙었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학졸업후 국전에 잇따라 낙선했고, 미술제도권에 환멸을 느껴 우리나라를 떠나기도 했다. 10년간 일했던 교사직도 버렸다. 백일된 아이를 품에 안은 부인의 배웅을 받으며 파리유학길에 올랐다.

오로지 그림만 그려 먹고사는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때 나이 35세. 파리생활은 기존의 틀을 부수고 깨트리고 지우는 몸부림이었다. 피카소 고흐를 선망하고 루오와 램브란트의 예술에 심취해 있던 그에게 파리는 서양화를 하면서 잃어버렸던 ’우리 것‘, 한국전통에 눈을 뜨게했다. 현대인의 소외감과 고뇌로 얼룩져있던 어두운 그림에서 벗어났다. 동료작가들이 추상화에 몰입하던 시기였다. 처용과 선화공주, 박타는 흥부, 민화속 호랑이가 화폭에 탄생하면서 익살과 풍자, 끈끈한 한국적 토착성이 생명력을 얻기 시작했다.’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예술관이 구축된게 38년전이다.

도전은 성공의 원동력이다. 이화백은 생전 “화가란 철저히 자기부정의 고비를 넘겨야 하며 언제라도 시련이 닥치면 또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화가와 선수. 경기와 그림은 닮았다. ’포기라는 적‘과 싸우며 자신을 넘어선 치열한 싸움의 결과다. 금메달이 개인의 것만이 아니고 우리나라 것이듯, 유명화가의 사후작품은 우리 문화유산으로 남는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스타와 거장은 없다. 양학선 선수가 ’양학선 기술‘을 완벽하게 완성하고 ’포기하지마 외침‘으로 사상 첫 동메달을 거머쥔 한국축구 모두 이 화백의 삶처럼 자기부정의 고비를 넘기고 시련을 이겨낸 ’땀과 노력의 결정체‘다. 그래서 우리는 스포츠와 예술을 보며 감동과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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