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걸럼> 통영, 인문학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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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8-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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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은 통영이다. 초등학교 교가의 작곡은 윤이상선생, 작사는 유치환 이었다. 통영은 예술가와 문학가를 많이 배출한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풍광이 아름다워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통영인들이 타향에서 부르는 노래중에 망향가(望鄕歌)가 있다. .

인왕(仁旺)의 거센바람 옷깃 날려도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앞 바다
마음은 물새처럼 천리(千里)를 날아
그림 같은 한려수도(閑麗水道) 굽어보누나 <망향가>

통영은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때 설치된 3도수군통제영(水軍統制營)에서 유래했다. 통영의 자연환경 탓인지 통영사람들은 남의 간섭 받기를 싫어하는 자유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관직이나 대그룹 같은 조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드문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이나 예술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양상은 완전히 다르다.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상옥, 유치환, 김춘수 그리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 화가 전혁림과 김형근 선생도 모두 통영출신이다. 인구 3만에 불과했던 통영이란 작은 항구도시에서 세계적인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아마 통영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인간의 감수성에 끼친 영향 때문일 듯 싶다.

통영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시인 최정규 선생은 "나를 키운 것은 소금끼 밴 통영의 바람이었다"고 고백한다. 통영인들에게 바다는 생명줄이다. 생계가 모두 바다와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다를 바라보며 정신적 안정을 얻기 때문이다. 통영에는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 매물도 등 약 2백개의 섬이 있어 많은 해산물이 나고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연출한다.

통영은 조선말 양반쌍놈의 신분제가 가장 먼저 철폐된 곳이다. 통영오광대를 보면양반이 쌍놈들로부터 봉변을 당한다. 그리고 통영항은 일찍 개항되어 일본으로부터 신식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하였다. 일제시대와 한국이 산업화 되기전까지 가장 부유한 항구도시로 오랬동안 이름을 날린 곳이기도 하다. 어장주, 객주, 지주 등 부유한 집 자녀들이 서울이나 동경으로 유학을 많이 떠났다.

통영사람의 기질은 상당히 독특하다. 평소 무뚝뚝하다가도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면 물불을 안가리고 폭발한다. 평소에 잔잔하던 바다도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큰 파도가 일어나는 것과 닮았다. 사람들은 의리를 지키고 따뜻한 가슴을 지녔으며 외지인들을 도와 함께 어울려 지내는 덕목을 갗췄다. 또한 인문학적 소양이 몸에 베어있어 문학, 철학, 예술을 삶속에 실천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기업경영에 인문학을 응용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기계적인 사고로 인한 인간한계를 극복하는데에는 인문학의 통찰력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어릴때부터 훌륭한 자연환경과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을 접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 고도의 리더쉽을 발휘할수 없다. 필자도 20여년을 중국에서 생활하며, 많은 실패를 겪었으나 만난을 극복한 원동력은 넉넉한 통영의 인문학적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날 때 다시 돌아오리라 마음을 먹지만 한번 떠나면 도시 삶의 유혹에 빠져 여간해서 되돌아가기가 쉽지않다. 통영의 바닷가에서 인문학적 정기를 온몸에 받고 자란 필자는 오늘도 고향을 등진 죄책감을 떨쳐 버릴수 없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요즘같이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 바다를 달려온 소금끼 밴 바람이 그리워진다.

<조평규(曹坪圭) 재중한국인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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