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스페인이 전면적 구제금융을 요청하더라도 국가신용등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스페인 정부와 유로존의 구제금융에 대한 세부적인 협상이 진행됨에 따라 향후 스페인 구제금융 신청에 대한 가능성과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
이번 구제금융 이슈가 여느 때와 다른 점은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매입 이슈와 시기를 같이하며, 스페인에 일반적 구제금융(직접 자금 지원)과 국채매입이라는 자금조달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옵션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 정부는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에 ECB가 국채매입과 관련된 세부사항을 약속해주기를 원한다고 밝히며 가능한 옵션들을 비교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하면 일단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것이기 때문에 호재라는 목소리와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호재가 아니라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다.
스페인이 전면적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면 그 형태가 자금을 직접 지원받는 형태이든, 국채매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게 되는 형태이든 호재로만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구제금융은 해당 기간 중 (일반적 구제금융 기간과 단기 국채매입을 가정할 때 3년 정도로 예상) 시간을 벌어줘 스페인이 경제개혁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지원이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긴축재정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구제금융이 성공적 경제개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소비는 정부 지출과 부채에 의존해 왔는데 긴축재정과 디레버리징을 전개하며 내수부문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수출에 있어 유로화 절하는 독일에 집중적인 수혜효과를 줄 뿐 스페인에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아직 ECB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채권자 측이 자금지원에 어떠한 조건을 내걸지는 불투명하지만, 구제금융 종료 시점에 스페인이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 경제성장률 목표 수준을 달성하고 자본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은 벌어주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닌 것이다.
이탈리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탈리아는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고 소비세·부동산세 인상을 추진하며 긴축정책을 펴고 있지만 정부 부채가 2조 유로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상반기 재정적자는 477억 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11억 유로 증가했다. 유로존 위기국들에 대한 지원금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경제규모에 비례해 ECB와 구제금융기구 등에 출자금을 내는데, 이탈리아는 유로존 내 경제규모 3위로 비용부담이 크다.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위기국 지원금을 출자해야 하는 것이고,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조건과 전개과정에 따라 유로존 내 채권국들의 지원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이탈리아의 경제개혁과 자금조달에 스페인 구제금융이 미치는 영향력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스페인 정부가 가능한 옵션 중 가장 부담이 덜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만큼 구제금융 신청 시기는 9월 예정된 ECB 통화정책회의와 독일 헌법재판소의 유럽안정화기구(ESM) 위헌소송 판결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구제금융 신청이 이루어지면 당장 급한 불을 끄고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주식시장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펀더멘털에 대한 의문이 다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이 호재로 받아들여 주가가 반등하는 정도와 기간은 구제금융 지원 형태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드라기의 국채매입 계획이 분데스방크와 북유럽 국가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성공한다면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구제금융보다 시장과 스페인이 느끼는 부담은 덜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ECB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또는 IMF가 어느 정도를 부담할지에 따라 스페인 국채 투자자들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의 경우 과거에 상환우선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으며, 그리스 헤어컷 당시에도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유럽중앙은행의 부담분이 늘면 스페인 국채 민간투자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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