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강동구 천호시장의 분위기는 황량하기만 했다. "싸게 팔아요. 한번 보고 가세요." 상인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텅빈 시장엔 공허한 메이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40년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천호시장은 관리가 소홀한 탓인지 전일 내린 비로 바닥 곳곳에 물이 고여있었다. 비와 햇빛을 막아 줄 천장 천막 역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A씨는 "비가 온 뒷면 항상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면서 "단골 손님은 괜찮지만 처음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위생적으로 꺼리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곳곳에 문을 닫은 상점도 눈에 띄었다.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장사를 접은 것이다. 최근 구청과 서울시가 전통시장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 이곳까지 닿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20년이 넘게 기름장사를 하는 B씨(69세)는 "이렇게 장사가 안되는지 설명 좀 해달라"고 반문하며 울먹였다. "전통시장 살린다고 말만 많지 실제로 좋아진 게 뭐가 있느냐? 이미 이곳은 죽은 시장이다. 걸음 못 걷는 노인들이나 여기 오지, 젊은 사람들은 다 마트간다." B씨는 하염없이 땅만 처다봤다.
나물가게를 15년 째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오늘 손님 1명에게 팔았는데 명절이나 평소나 다를 게 없다"며 "요즘 사람들은 카드를 들고 다니니까 마트가 편한데 여기는 그런 게 하나도 안 돼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불경기 때문에 명절 기분을 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었다.
시장을 찾은 B(67세)씨는 "작년엔 추석 보너스로 10만원을 줬는데 올해는 5만원으로 줄었다"며 "물가도 부담인 게 시금치, 생선 2마리, 깨소금 산 게 전부인데 벌써 4만원이나 썼다"고 말했다.
같은 날 경기도 남양주 한 대형마트는 막바지 추석 준비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차례상 물품을 준비하기 위한 주부부터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세트를 보고 있는 신혼부부까지 전통시장과 달리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부 임순희(52)씨는 "음식, 제사용품 등 추석 준비에 필요한 물품을 한번에 쇼핑할 수 있어 명절이면 마트를 찾는다"며 "전통시장이나 대형마트나 차를 타고 나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마트가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소량으로 담아 파는 전, 나물 등 명절 음식을 진열하기 무섭게 고객들의 바구니 속으로 들어갔다.
이곳 한 직원은 "명절 준비를 간소하게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직접 차례상 음식을 만들지 않고 마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선물세트를 한 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것도 대형마트의 장점으로 꼽혔다.
직장인 여선구(29)씨는 "내일 집에 방문하는 친척들에게 줄 선물세트를 사러 나왔다"며 "대형마트 다양한 구색이 갖춰져 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선물들이 많아 명절 때마다 찾는다"고 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