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987년 12월 1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사기(社旗)를 흔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
국내 최대 그룹을 이끌게 된 이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첨단 기술산업분야를 더욱 넓히고 해외사업의 활성화로 그룹의 국제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개발과 신경영 기법 또한 적극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2012년. 삼성은 328억9000만 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세계 9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에 못미치던 그룹 매출은 올해 들어 383조원을 돌파하며 39배가량 급증했다.
이 회장은 선대 회장인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이뤄놓은 경영성과의 토대 위에 본인만의 경영철학을 결합시켜 삼성을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이 회장은 호암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유지돼왔던 삼성에 '효율성'의 원칙을 적용했다. 호암은 신라호텔의 문고리 하나까지 챙길 정도로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기업가였다. 그러나 이 같은 경영방식은 거대조직으로 성장한 삼성의 의사소통 체계로는 맞지 않았다. 이 회장은 사업부문별로 전문경영인을 육성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의 범위를 넓혔다.
조직문화의 혁신은 삼성의 체질개선으로 이어졌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기업으로 변모하면서 반도체와 휴대폰, 가전, 중공업, 건설 등 각 분야에서 '월드 베스트' 반열에 오르게 됐다.
위기도 없지 않았다. 특히 1997년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로 삼성은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게 된다. 지난 1996년 글로벌 제조기업 중 76위였던 삼성은 1년 만에 138위로 추락했다. 1997년 6만원을 웃돌았던 주가도 폭락을 거듭해 이듬해 초에는 3만원대로 반토막이 나기도 했다.
삼성은 '구조조정위원회'를 발족하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조직의 30% 감축, 총비용 50% 절감, 급여 10% 삭감, 투자규모 30% 감축 등 그룹 전체가 휘청할 정도로 강도 높은 몸집 줄이기였다.
17만명이었던 직원 수가 11만명으로 급감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지만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위기를 극복했다. 이후 삼성은 양보다 질을 우선하는 경영을 펼치게 됐고, 이 회장이 애착을 보였던 자동차사업도 과감히 포기하는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룹 역량을 극대화했다.
위기를 넘긴 결실은 달콤했다. 외환위기 당시 3조원대로 추락했던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 197조원으로 무려 66배가량 증가했다. 그룹 전체 시가총액도 이 회장 취임 당시인 1987년 1조원에서 올해 303조2000억원으로 25년 동안 303배 올랐다.
수출도 다시 활기를 찾았다. 올해 삼성의 수출액은 1567억 달러로 한국 전체 수출액 중 28.2%를 기록했다. 지난 1987년과 비교하면 25배 급증한 수치다. 현재 삼성의 직원 수는 42만명으로 1987년 대비 4배가량 늘었으며, 글로벌 인재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25년 동안 이 회장은 거칠 것 없이 달려왔지만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앞으로 예상하지 못한 변화들이 나타날 것"이라며 "기존의 틀을 모두 깨고 새로운 것만 생각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기적의 성공신화를 이뤄낸 이 회장의 다음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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