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_stare around II, 56x75.5cm, indian ink & korean color on paper over panel, 2012.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어느날 아스팔트에 돋아난 식물이 눈에 띄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느낀 '초라한 기분'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자신감에 다시 생명력이 얻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식물과의 인연은 그의 화폭을 지배하는 독특한 생명력으로 태어났다.
2003년 첫 개인전부터 '식물 시리즈'로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는 한국화가 박상미(36) 얘기다.
5일부터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연 13회 개인전 'scene-장면'전은 톡 튀는 원색의 화면으로 따뜻하고 생기가 넘친다.
강렬한 원색으로 색면을 구성한 화면은 반듯이 정리된 직선이 돋보여 깔끔한 그래픽처럼 보인다. 하지만 볼수록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자아낸다.
무성하게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거무튀튀하게 그려진 빽빽한 나무들 때문인 것 같다.
집과 집사이, 건물과 건물사이에 들어선 나무들은 초록의 싱그러움이 넘치는 색감이 아니다. 생기 넘치는 배경 건물과 달리 무채색으로 표현됐다.
"식물은 곧 나"라는 작가는 '거무튀튀한 나무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사회공간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친숙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작가의 감정이다.
화려한 색감으로 서양화같기도 하지만, 작품은 분채와 석채로 그린 한국화다.
'한국화 같지않은' 작품에 대해 작가는 "먹을 사용하면서 한국화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며 "분채를 사용하며 가루 섞는 색의 조합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두꺼운 장지에 6~7번 석채를 쌓아올려 진채법(眞彩法·단청처럼 매우 진하고 불투명하게 채색하는 것)으로 그려진 작품은 발광하지 않는다. 유난히 빛나는 주홍색 화분은 곱고 선명하면서도 얌전해 보인다.
반면,식물이미지는 색색의 배경과 달리 수묵으로 그려져 싱싱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번식력이 강하다. 화면을 유영하듯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먹선과 무성하게 밀집된 형태에서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빽빽하게 자리잡은 식물들에 대해 작가는 "하나의 뿌리에서 여러 형태의 줄기와 잎의 모양이 나오는 식물처럼 현대인도 다중적인 면이 있지 않느냐"며 "결핍이 결핍을 채우려 과잉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동양화에서의 여백 역할을 하는 것이 무채색 식물”이라며 "식물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것 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작가는, 작가로서 욕심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먹으로 하는 드로잉과 스며드는 먹의 매력에 빠져있다"는 작가는 '수묵의 나무나 식물'이 "나이면서 현대인기도 하다"고 했다.
"번지고 스미는 수묵의 식물들은 앞으로 더 무성해질 수 있고 더 밝은 색을 입을 수 있죠. 집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식물들은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나이거나 또는 창문을 통해 나를 지켜보는 또다른 나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 그동안 독일 파리를 여행하며 눈에 담았던 기억풍경을 짜깁기하듯 풀어냈다.
하계훈 미술평론가는 "무채색의 식물이미지는 현대사회 인간에게서 발견하는 다중성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며 "먹색과 화려한 채색이 공존하는 동서양 회화의 미묘한 조형적 조합을 보여주는 박상미의 작품은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장면을 동시에 교차경험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6년 한국 미술대전 한국화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신예작가로 떠올랐다.전시는 22일까지.(02)730-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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