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국교수립 이전인 1992년 초 중국 베이징으로 파견돼 현대자동차 베이징 사무소를 개설하고 7년 동안 초대 지사장을 역임한 송훈천씨는 자서전 '북경일기'에서 현대차의 중국 진출을 위해 이렇게 중국 정부를 이렇게 설득했다고 밝혔다.
글 속에는 한국 제조업이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술도 몰랐고 도와주는 이들도 거의 없었던 당시, 우리 기업은 송 씨가 언급한 현대자동차처럼 무모하다 싶은 도전을 통해 이뤄냈다. 아무 것도 모르니 직원들은 내 일, 네 일 구분 없이 모든 일에 함께 했기에 다 알아야 했고, 최고경영자(CEO)는 중심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이끌었다.
20년·30년 장기근속하며 회사를 이끌어온 이들이 정년을 맞으며 직장을 떠나고 있다. 이들의 은퇴와 맞물려 전국 대규모 사업장에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1990년대 대형사고가 부실공사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은 관리 부실 원인이 더 많아 보인다.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관리시스템은 고도화됐는데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사람 때문인 것은 왜일까?
최근 사업장을 지키는 이들은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입사해, 공정 자동화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내 일만 잘하면 되고, 다른 일은 그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면 됐다. 간부들도 자신의 전공 이외에 분야에는 매뉴얼을 보고 배우면 그만이다.
이로써 업무의 효율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틀에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업무 행태는 틀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길 위에 못이 떨어져 있으면, 중대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몸으로 느끼지만, 지금은 매뉴얼에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버린다.
‘선배’들이 리더가 떠나는 기업들은 지금이 위기 중에 진짜 위기라고 말한다.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 기업이 겪는 변화는 지휘관과 안살림을 맡아온 하사관, 내무반을 이끄는 병장이 모두 한날 한시에 제대한 군부대가 처한 상황과 같다"고 설명했다. 총수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의사결정기구가 공백인 가운데 사업장을 지탱해왔던 장기근무 직원들까지 대거 은퇴해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생산 현장에서도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안전대책의 개선책을 내놓으면서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을 서두르는 것도 기술 전수 뿐만 아니라 안전의식도 현장에서 눈을 맞추며 손을 잡아가며 일했던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현장에 남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총수의 복귀가 좌절된 기업들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은퇴자들이라도 붙잡고 싶어할 만큼 '위기'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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