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 간 납치문제는 2002년 고이즈미(小泉純一郎) 총리의 방북에 따라 북한이 일본인 납치피해자에 대해 "생존자 5명, 사망자 8명"이라고 처음으로 인정하고, 2004년 고이즈미 총리가 재방북해 생존자 5명과 함께 귀국했다. 그 후 북한이 납치피해자 조사에 응했으나, 납치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이 '가짜 유골'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일본은 꾸준히 재조사를 요구해 온 경위가 있다.
아베 총리는 납치문제를 일으킨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자세가 일정한 평가를 받아 2006년에 처음으로 총리로 선출됐다. 그 후 아베 총리는 계속해서 “정권의 최우선과제”로 납치문제 해결을 주장해 왔다.
최근 자신의 역사인식문제 등으로 한국, 중국과의 관계 악화가 심화되면서 이러한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는 아베 총리의 외교력 평가에서 늘 감점 요인이 됐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외교력을 평가 받고, 눈에 보이는 외교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납치문제’를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베 총리에게 납치문제는 전문 분야이자 가장 자신이 있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납치피해자 가족들의 고령화로 문제 해결의 시간이 촉박하고 지지율이 조금이라도 높아 정권에 힘이 있을 때가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이러한 판단에는 큰 리스크도 뒤따른다. 그것은 과거에도 북한이 일본과의 협상에서 여러 번 합의 결과를 번복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8월 후쿠다 정권 시절에 북한과 납치피해자 재조사에 합의했으나, 일본 총리가 교체됐다는 이유로 북한은 합의를 백지화했다.
아베 총리에게 있어서 이번 합의는 가시적인 외교성과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북한이 진지하게 조사에 임할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아베 총리가 성과 올리기에 급급해지면, 북한은 그 점을 노리고 제재해제와 경제지원 등을 요구해 올 가능성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국가인 북한과 교섭을 시작한다는 것은 외교적인 리스크 뿐 아니라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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