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모석봉 기자 = 동료의 자동차를 타고 함께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얻어 탄 주제에 이런 말을 하긴 미안한 말이나 그의 차는 상당히 낡았다.
연식이 한 20년쯤은 된단다. 그는 수시로 수리하고 잘 관리해 왔다고 말했는데, 정작 조수석에 탄 나만큼이나 그도 편해 보이진 않았다.
수동 변속기는 뻑뻑해 기어를 바꿀 때마다 힘을 줘야 했고, 가뜩이나 무더운 날 에어컨 바람도 맥이 빠졌다. 에어컨을 틀었더니 차가 잘 나가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세월은 이겨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 건강보험과 관련된 뉴스를 보며 우리 건강보험제도가 그 낡은 자동차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15년이 넘은 자동차에는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를 매기지 않는다는 보건복지부 발표를 믿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확인까지 했는데 정작 연소득 500만 원 이하인 세대는 감면 대상이 아니라서, 오래된 중고차를 장만한 민원인이 추가로 보험료를 내야 했다는 사연이 뉴스의 내용이었다.
민원을 상대한 직원이나 이 사연을 밝힌 건보공단 이사장도 경위를 파악하고 황당했을 것이다. 필자도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누구를 위한 혜택이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이런 사연이 한둘이 아니다. 정년퇴직을 했더니 건강보험료가 오히려 오른다거나, 거액의 자산가가 아들 회사의 수위로 위장취업을 해서 보험료를 만 원밖에 안낸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이전에 들었다.
이런 보험료 관련 불만으로 민원을 제기한 건수가 작년에만 5700만 건이 넘는다니, 보험료 산정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 관련 문제의 상당수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피부양자 등 복잡하게 나눈 보험료 부과기준에서 비롯된다. 직장인은 간단하게 소득의 3% 정도를 보험료로 내면 그만인데, 자영업자 등은 집과 자동차, 부양가족의 수 등을 점수로 환산해 보험료를 매긴다.
직장인의 가족은 보험료를 내지도 않는다. 자격에 따라 보험료를 매기는 방식이 제각각이니 편법행위가 발생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더군다나, 지역보험료는 계산하기도 쉽지 않다. 공단에 물어보니, 보험료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지만 전산오류나 민원이라도 발생하면 직원들이 일일이 계산을 해서 설명해야 한단다. 컴퓨터 시대에 톱니바퀴를 돌리는 셈이다.
세월을 피해갈 수 없는 건 자동차나 제도나 마찬가지다. 20년 된 자동차는 아무리 고쳐도 새 차만 못하며, 톱니바퀴에 아무리 기름칠을 해도 그저 좋은 톱니바퀴일 뿐이다.
30년 이상 된 지금의 건강보험료 부과방식도 아무리 손질을 한들 근본부터 바로잡느니만 못할 것이다.
편법은 또 다른 편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다소 혼란은 있겠지만, 21세기 한국인의 생활방식에 적합한 기준을 국민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결국 모두의 편익에 기여할 것이다.
덧붙이면, 20년 된 자동차의 주인이었던 동료는 결국 새 차를 장만했다. 돈이야 들었지만 그동안 왜 그런 걸 참고 탔는지 모르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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