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는 대만 정치·사회·경제의 중심도시다. 대만의 북쪽에 위치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대만의 중부에는 타이중(台中)이, 남부에는 타이난(台南)이 소재해 있다.
대만은 본래 현지 원주민인 고산족이 살던 조용한 섬이었다. 명 나라 때부터 푸젠성,광둥성 등 대륙 연해지역 한족들도 대륙에서 건너와 거주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중엽 해상무역의 발달과 함께 번성한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대만을 40여년간 식민 통치하기도 했다. 이때 대만을 서구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킨 사람이 오늘날 대만 민족영웅으로 추앙받는 정성공(鄭成功) 장군이다. 명 나라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로 청나라에 항거하던 정성공은 1661년 네덜란드 인을 내쫓고 대만을 통치하며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후 1683년 청 나라 군대가 점령하며 대만은 중국의 땅 덩어리가 됐다. 당시 중국 대륙 각지 사람들이 대거 대만으로 이주하며 대만에 정착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 나라가 일본과 체결한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대만은 51년 간 일본 식민통치도 경험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군은 대만에서 온건한 방식의 통치를 전개했다. 아직도 대만에 친일감정이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유다.
본성인의 외성인에 대한 반감은 ‘2·28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국민당이 대만으로 철수하기 2년 전인 1947년 2월 28일 타이베이에서 중국 대륙 출신의 관리(외성인)가 전매국 단속원들이 밀수 담배를 팔던 한 좌판상 여인을 과잉단속하는 과정에서 총격이 발생해 본성인(대만인) 한 명이 사망한 것. 이로부터 3개월간 계속된 대만 본성인들의 시위는 국민당 정권이 군대를 파견해 진압됐다. 이로 인해 2만여명의 주민이 학살됐으며, 당시 선포한 계엄령이 38년후인 1987년에까지 지속되면서 대만엔 기나긴 공포정치가 이어졌다.
하지만 공포 정치 속에서도 대만은 ‘아시아의 네마리 용’으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달성했다. 대만의 경제발전의 원천은 바로 정보기술(IT) 역량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대만의 중심도시 타이베이가 자리잡고 있다.
타이베이 인근에만 미국 실리콘밸리를 본 따 만든 대만 반도체산업의 메카인 신주(新竹)과학단지를 비롯해 난강(南港)소프트웨어공업단지, 네이후(內湖)과학기술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회사 TSMC를 비롯해 에이서, AUO, UMC, HTC, 폭스콘 등도 모두 이곳서 중소기업으로 시작해 세계 IT 시장을 주름잡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삼성전자에 치이며 잠시 주춤했던 대만 IT 기업들은 최근엔 애플의 아이폰 등 주요 스마트기기 제품의 주요 부품을 공급하며 실적이 호전되고 있다. 여기에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관계가 밀접해짐에 따라 다가오는 ‘차이완(중국과 대만의 영문합성어) 시대’ 최대 수혜자가 됐다. TSMC는 지난 상반기 11조3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주가가 25% 올랐다. 폭스콘도 지난 3분기에 사상 처음으로 1조 대만달러(약 34조원)의 매출 기록을 세웠다.
다만 양안 관계가 밀접해짐에 따라 대만 경제가 중국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홍콩 민주화 시위가 한창일 당시 타이베이 자유광장에는 민간단체와 학생 3000여 명이 집결해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한편 지난 2012년 5월엔 김포공항과 타이베이 쑹산(嵩山)공항 간 하늘 길도 34년 만에 부활했다. 한때 대만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자유중국'으로 불리며 가장 친한 상대였지만 지난 1992년 한국이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대만과 일방적으로 단교하면서 대만은 한국과 멀어졌다. 이후 각각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와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를 설치하는 등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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