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시골편지] 저물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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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0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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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너는 내가 아껴 사는 돌담의 찔레꽃
사금파리만한 창가 나무의자에 모시처럼 앉아
문밖 강바람이나 저물녘 물소리 곁에서
목 하얗게 사는 아직도 작은 눈짓


봄비 돌담서 낮게 우는 날
빗소리 젖은 책을 읽다 촉촉한 행간
고양이처럼 졸다 커피를 탄다
너의 머리카락에서 맡는 오래된 커피향
손을 잡으면 커피에서도 찔레꽃이 피고


커피를 마시다 비는 그치고
너 오던 날 심은 돌배나무잎마다 배꽃이 피면
가벼워진 그림자 뒤를 밟아 산사에나 다녀올까
바람 성성한 부채 하나 들고


세월을 부치다 날리다 그렇게 살다
어느새 너는 마당가 국화 서리가 내리고
나는 해 긴 날의 노을로 지다보면


우리 그만 잊을 만큼 사랑했고
더욱 그리워 할 만큼 미워도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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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면서부터 집을 짓고 있다. 콘크리트 바닥 기초를 하고 나무로 골조를 세우고 창을 달고 지붕을 덮고, 정신없이 몰아쳤다. 그렇게 바삐 사는 와중에 잠깐 고개를 돌려보니 언덕 위 찔레꽃이 흐드러졌다. 장미향보다 짙은 꽃향이다. 저녁 어스름에 촉촉히 내리는 봄비, 커피를 탄다. 커피에서도 찔레향이 난다. 참 좋은 여유다. 요만큼 살면 좋겠다. 커피를 마시다 책을 읽다 졸다가 바람 좋아 꽃 피는 날 모시적삼 풀먹여 빳빳히 다림질해 입고 가까운 산사에도 다녀오고, 그러다 보면 옆에 있는 사람은 늦가을 국화같이 늙고 나도 노을처럼 질테고... 사랑하고 미워한 것들, 그리 사는 것들 다 부질없는 것인데 요즘 너무 바삐 산다.

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저물녘에 [사진=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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