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내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던 아베 총리가 돌변(?)한 것과 관련해, 사실상 미국이 '중재'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 안팎의 중론이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성향 정치인인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2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군위안부 제도에 일본군과 관(官)이 관여한 사실을 일정한 고노(河野) 담화를 수정할 뜻을 명확히 밝혔다.
집권 후에도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하는데 주력했다. 또 '성노예라는 말은 근거없는 중상'이라고 국회에서 주장하기도 해 사실상 아베 총리의 이날 '담판'을 두고 의아해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베 총리는 국제 사회에서 자신이 군위안부 부정론자로 비난받는 상황에 직면했다.
역사인식 문제가 한일관계의 장애물이 되면서 한미일 3자 공조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을 종식하려는 미국으로서는 아베 총리의 이 같은 행보를 무시 할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4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끔찍하고 매우 지독한 인권침해 문제"라고 말한 것은 아베에게도 강한 메시지가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11월 2일 서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오고 간 연내 위안부 문제 타결 가속화 합의는 일종의 '복선'이 됐다.
여기에 집단 자위권 법 강행 처리(9월 19일)로 인해 떨어졌던 내각 지지율이 11월 이후 다시 50%에 육박할 정도로 회복되면서, 군 위안부와 관련해 합의를 하더라도 지지층인 보수층이 크게 동요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아베 총리의 결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지난 17일 산케이 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한국 법원의 무죄 판결과 23일 한일 청구권 협정의 위헌 여부 판단을 회피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베 총리의 결단에 박차를 가한 격이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미국의 입김이었다.
미국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한·일 양국을 상대로 물밑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강하게 주문, 위안부 문제 타결을 독려해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주창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이 중국의 급부상에 대비한 한·미·일 협력 강화이기 때문이다.
성 김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겸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도 지난 4일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 뒤 "한·일 양국이 건설적이고 강력한 관계를 갖기를 희망하며, 현재 양국이 중요한 우려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여기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남겨둔 상황에서 내년 11월 대선 이전에 한·일 간 과거사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1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에게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도 이날 "미국 정부가 한·일 양국에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라고 강력히 요청해왔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현재 내년 3월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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