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E B 폴라드 지음 | 이미경 옮김 | 책읽는귀족 펴냄
"우리나라 정서상 여성이 똑똑한 척하면 굉장히 밉상을 산다." "약간 모자란 듯한 표정을 짓는 게 한결 낫다."
지난달 한 여성 국회의원이 했던 발언이다.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유엔이 1975년 지정한 '여성의 날'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저런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의 여성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역사의 주인공은 남성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여성이 주인공이다. 특히 동양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해 왔고, 가족과 사회에서는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펼쳐진다. 서양의 남성 지식인이자 이방인인 저자는 전설과 신화, 때로는 역사적 사실과 문학 속 에피소드 등을 통해 흥미로우면서도 생생한 여성 이야기를 풀어낸다.
"조선의 여성들은 전혀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같지는 않다. 남성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여성들을 존중한다.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거리에서 여성을 만나면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서기도 하고, 여성에게는 가장 정중한 어조로 말을 한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더 공경해야 하지만, 어머니도 공경하도록 배운다."
저자의 이런 통찰이 비단 과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기자만의 것일까.
616쪽 | 2만4000원
◆ '연금의 배신' 조연행 지음 | 북클라우드 펴냄
"보험회사들은 변액연금보험을 판매할 때 투자 손실로 원금을 까먹는 일이 생기더라도 원금을 채워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원금 보장은 아무 때나 돈을 찾아도 납입원금을 돌려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연금개시 시점에 납입원금에 못 미칠 경우 이를 채워준다는 의미다. 중도 해지할 경우에는 원금 보장과 상관없이 납입원금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노후 보장, 아니 최소한의 노후 '연명'을 위해 저마다 개인연금상품에 가입하기 바쁘다. 상품 판매사들은 준비되지 않은 노후에 대한 위기감을 부풀리며 가입자들을 끌어모은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전문 소비자단체 '보험소비자연맹'의 창설자이자 보험상품 개발자인 조연행은 개인연금상품의 뻥튀기 수익률을 비롯해 금융회사에서 떼어가는 막대한 비용의 정체, 별 생각없이 가입하는 연금상품에 숨겨진 치밀한 꼼수 등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연금의 실체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똑똑한 가입절차 10계명부터 합법적으로 세금 덜 내고 연금 받는 법, 금쪽같은 퇴직연금 불리는 비법까지 100세 시대를 이기는 연금 관리 노하우도 소개한다.
변액연금보험·종신형연금·종신보험·즉시연금 등 가입만 하고 내용은 잘 몰랐던 각종 연금상품의 실체를 알게 되면, 장롱속에 먼지 쌓인 상품계약서를 꺼내 보게 될 듯하다.
312쪽 |1만4500원
◆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자크 아탈리 지음 | 양영란 옮김 | 책담 펴냄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혹자는 그를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고문,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 등으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는 '유럽의 석학'으로 불릴만큼 경제학·평전·소설·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사회 변화와 미래 세계의 가능성을 전망해 온 인물이다. '미래의 물결' '위기 그리고 그 이후'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등 내로라하는 저작들도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의 신조어가 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회,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도 꿈꿀 수도 없는 시대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다. 아탈리는 이를 '컨템퍼러리 모더니티'의 특징으로 해석한다. 고대 사회 이후 정치·경제·사회·과학·문화적 진보가 얽히고설킨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세계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이 시대에 미래를 추론하고 대비하는 일에는 지엽적 해결책보다 인문학·세계사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설파한다.
세상을 바꾼 인물들과 그들의 저작들을 시대를 초월해 연결하고 '모더니티'라는 인류 진보의 궤적 아래 정렬하는 아탈리의 능수능란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있다.
256쪽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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