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이 최근에 만든 제헌헌법은 힌두교를 유일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불교를 포함해 다른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힌두교를 사실상 국교화한 인도 정부 입장에서는 좀 불편하다. 그래서 벌어진 것이 국경봉쇄일까? 사방이 육지로 바다와 인접하지 않은 나라 네팔은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어서 아슬아슬한 외교전을 매우 '능숙하게' 펼치고 있는 나라다. 그 결과 헌법이 없고 국방력도 없는 나라임에도 독립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에 이어 네팔은 국경 봉쇄라는 인재(人災)로 인해 석유 공급이 끊겨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칠대로 지치는 고생을 했다. 최근에 봉쇄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네팔의 연료상황은 아직 안정되지 못한 듯하다. 가끔 주유소에서 배급하는 가솔린 등을 얻기 위해 1000대 이상의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기 때문이다.
네팔의 버스는 평소에도 엄청난 버스로 붐빈다. 2명이 앉는 자리는 항상 3명 이상이 앉는다. 서 있는 자리도 완전 밀착돼 꼼짝도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지붕 위에 앉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건 약과였다. 석유파동 이후 가솔린을 제대로 구하지 못한 탓에 만원버스는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NGO단체인 '나마스떼코리아'에서 제2호 드림센터 건립 추진을 위해 파견된 김주하 현지 봉사단원은 “경비행기보다 무서운 시내버스”라고 말한다.
최근 추락한 따라항공의 20인승이 채 안 되는 경비행기보다도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아슬아슬 하안나푸르나의 고갯길을 넘는 버스는 움푹 패인 비포장도로 상황에 따라 출렁인다. 한쪽으로 쏠리며 출렁일 때마다 혹시 절벽으로 떨어지진 않을까 외국인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네팔 현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불교의 최고의 경지인 ‘무념무상’이 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버스에서의 그런 걱정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굽이를 돌 때 구름 사이에서 해발 80000m 이상의 히말라야 고봉들이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의 설산들이 보이면 모두의 가슴은 심장촉진제를 맞은 것처럼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고진감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자신을 잊는 경계, 무아지경을 느낄 수 있기에 네팔 히말라야는 삶을 돌아보려는 여행자들의 고향으로 불리나보다. 히말라야를 본 사람은 모두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이 그 일부라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게 된다. 그래서 네팔을 찾은 사람은 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하차벨이 따로 없는 네팔의 산악 버스는 이윽고 종점에 다다른다. 가끔 내릴 승객이 부근의 의자나 버스 창이나 벽(?)을 쿵쿵 치는 것을 보았다. 짐이 떨어지려고 하거나 길가에 어린아이가 갑자기 뛰어나오는 위험한 순간에도 일부 승객들은 버스 기사에게 위험을 알리기도 한다. 하지만 종점에서는 지붕에 탔던 버스 보조원 겸 안내원을 하는 소년이 뛰어내려 문을 열어 준다.
마을 입구 큰길에서 벗어나, 해발 1300∼1800m의 산록을 촘촘히 채운 계단식 다랭이 논에 난 논둑길을 택한다. 그 길을 걷노라면 멀리서 다가오는 아이들 가운데 한두 명이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수년간 봉사활동을 하고 간단한 한국어 인사를 가르친 덕분이다. 이윽고 멀리 다가오는 물소를 피하라며 뒤에서 소리지르는 어린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가끔 길에서 만나는 안나푸르나 산골 오지마을 '땅띵'의 어른들, 학교 선생님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언제 준비했는지 금방 집과 학교에서 다양한 색의 카닥과 들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 준다. 그렇게 짧은 돌 계단길을 걸어 숙소에 도착하면,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마을 어른들이 환영의 노래와 춤을 시작한다.
환영식 겸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어둑어둑하다. 1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동네 사람들은 친절하게 손전등을 들고 귀갓길 안내를 하며 동행해준다. 사실 산골 오지 마을의 길은 매우 위험하다.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가끔 눈속의 호랑이이라고 불리는 레오퍼드(표범)가 나오기 때문이다. 곰도 있고 멧돼지도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 레오퍼드를 두려워 한다. 가끔 물소들이 한 두마리 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산골 오지 마을 땅띵은 수력 발전을 통해 전기를 사용한다. 우기라도 발전기는 110∼160V 정도의 전력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220V를 사용해야 하는 큰 TV나 냉장고 등은 사용이 어렵거나 자주 고장이 난다. 하지만 인버터와 충전기를 구비하고 태양광을 추가로 설치해 연결하면 200V에 가까운 전력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인공위성을 이용한 무선 와이파이 등을 설치한다. 놀랍게도 대형 TV에 잡히는 방송은 오후 6시 이후 농사 일을 마친 마을사람들을 한자리로 모은다. 비싸면서도 잘 안되는 3G 대신 비교적 고속(?)인 무료 와이파이도 한몫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부한 노트북 등을 설치해 핸드폰을 갖지 않은 어린이들도 인터넷으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네팔의 베스트셀러 도서들도 구비하여 마을 사람들의 문화적 필요성을 충족시켰다. 아울러 부족한 교사와 컴퓨터 기사를 채용하여 컴퓨터 등을 이용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할 수도 있게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드림센터는 마을의 사랑방이자 교육현장이 된다. 나마스떼코리아(이사장 한승철)은 작년에 기존의 오래된 건물이나 사용하지 않는 건물을 리뉴얼해서 땅띵에 제1호 드림센터를 만든 바 있다.
땅띵 윗마을의 성공을 보고 아랫마을 감랑의 선생님들이 땅띵의 10학년제 학교의 교장 옴프라카시를 찾는다. 나마스떼코리아의 현지 법인인 NGO 나마스떼 안나푸르나의 지부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다른 마을의 도움 요청에 인색하지 않다. 자기 마을만 잘 살려고 하지 않고 함께 잘 되기를 바란다. 물론 자기 마을이 먼저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네팔에서 우리는 이렇게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철학이 무엇인지를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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