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 왕자인(王佳音) 기자 =베이징 동쪽 교외에 자리잡은 ‘잡서관(雜書館)’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따스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본디 ‘雜(섞일 잡)’에는 비주류, 혼합, 발췌 등의 뜻이 있다. 가오샤오쑹(高曉松) 관장은 이곳이 비록 크고 멋있는 도서관은 아니지만 잡다하게 구석구석 온갖 책이 다 있다는 뜻에서 도서관 이름을 ‘잡서관’이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잡다하지만 잡스럽지 않은 곳
잡서관 건립 취지에 대해 가오 관장은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샤오쑹치탄(曉松奇談)>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도서관을 지어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은 독서가들이 어릴 때부터 품는 꿈이다. 처음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때마침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장서가인 친구 한명이 무려 100만권의 장서를 기증해 주었다. 게다가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었다. 그렇게 모두들 합심해서 도서관을 열게 됐다.” 이 외에도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며 익명의 장서가 몇 명이 30여 년 동안 간직해 온 ‘보물’들을 기증했다.
잡서관이 처음 문을 연 것은 2015년 11월 27일이다. 하지만 개관 몇 달 만에 방문객 수는 벌써 수만 명을 넘어섰다. 기자는 이런 도서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주말 오후를 골라 방문했다. 마침 춘제(春節, 음력 설) 전날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등록을 하던 관리직원이 입구 쪽에 놓인 과일과 음료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료니까 편하게 드세요.” 입구에는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망원경, 돋보기, 확대경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잡서관은 방문객 수를 제한하기 위해 예약제로 운영된다. 하루 입장객 수는 평일 100명, 주말 500명으로 제한된다. 관리직원에 따르면 개관 초기 몇 주 동안은 거의 인터넷 예약이 꽉 차 “나흘 연속 시도해도 예약이 안 된다”는 누리꾼들의 불만을 들었어야 했다.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추이거좡샹(崔各莊鄉) 허거좡(何各莊)촌 328호 훙창 디자인콘텐츠산업단지(紅廠設計創意產業園)에 위치한 잡서관은 도심과 꽤 떨어져 있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 한번 들어오면 하루 종일 머무른다. 잡서관 면적은 3000m²가량으로 국학관(國學館)과 신서관(新書館)으로 나누어 운영되고 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국학관이었다. 줄지어 선 서가 사이를 걷노라니 문득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손길 닿는 대로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19세기 초에 출판된 책이었다. 영국 법전, 프랑스 역사, 중국 고전소설도 있었다. 누리꾼들의 평대로 연감(年鑒)과 지지(地志)에서부터 사적인 서한이나 소장용 문집까지 귀한 자료들로 가득했다. 책을 펼쳐 들고 머릿속으로 잠시 책을 기증한 장서가의 인생과 경험을 빠르게 그려 보았다.
국학관은 3층에 걸쳐 여덟 개 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에는 서양어문 한학관(西文漢學館), 특별소장 신서관(特藏新書館), 명인들의 서한과 친필원고 보존 1관이 있다. 2층에는 선장(線裝) 고서관, 민족·민속 고서관, 명인들의 서한과 친필원고 보존 2관이 있다. 3층에는 청 말-민국(民國) 시기 간행물관, 민국 도서문헌관이 있다. 잡서관의 장서와 종이 문헌자료를 합치면 무려 100만권에 달한다.
신서관의 모습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 교수 서재를 방불케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출판된 중국 고대 경사자집(經史子集)경전, 중국 고전소설, 중국 근·현대 명인 문집, 중국 근·현대 문학, 역사, 철학, 외국 문학, 사학, 중국 국내외 경제학과 인물 전기, 아동 도서 등 20만 권이 넘는 서적이 4미터 높이의 서가에서 독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서(新書)’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곳에는 빛바랜 ‘노서(老書)’와 공공도서관에서 퇴출된 낡은 책들이 오랜 향기를 내뿜고 있다. 1층에는 작은 테이블과 소파, 2층에는 고색창연한 목재 의자가 놓여 있다.
신서관에는 아동 전문 열람실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블록도 있고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편안한 소파도 준비되어 있다. 특히 『비등적군산(沸騰的群山)』, 『백모녀(白毛女)』, 『풍운초기(風雲初記)』 등 그림책으로 된 아동 도서가 눈에 띄었다.
서점을 수십년 넘게 다니면서 서점에 진열된,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책들을 꿰고 있다는 사람들도 이곳에 오기만 하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서점에서 몇 년 혹은 십 년 넘게 구경해 보지 못했던 책에서, 심지어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책들까지 모두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잡서관의 자오(趙) 부관장은 “한 분야의 지식에 대한 여러 판본의 도서를 함께 진열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독자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더욱 객관적이고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는 서로 대립되는 관점의 책들을 함께 꽂아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직원인 왕(汪) 씨는 잡서관에는 80~90년대 책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도서관에도 옛날 책들이 있긴 하지만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어 한번에 모아서 보기가 힘들다”며 “이곳은 나에게는 아주 잘 맞는 곳이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 종일 있다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간학술의 ‘장서각(藏書閣)’
중국 역사를 연구할 때는 대개 『사기(史記)』, 『자치통감(資治通鑒)』 등 국가적으로 편찬한 사서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민간에서도 보권(寶卷·승려들의 설법 고사), 고사(鼓詞·북의 반주에 맞춰 창과 말을 번갈아 하는 창극으로 주로 인물과 사건 등을 담고있음), 창본(唱本·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가요의 형식으로 전해 내려온 민간 이야기) 등 역사를 기록한 문헌들이 상당수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런 자료들을 묻히지 않게 해야 옳다. 이미 충분히 오래된 자료를 우리는 다시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 이렇게 계속 묻어두고 소수만이 공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역사란 일부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립된 연구 방식에서 벗어나 세상과 사람들을 두루 살피는 형태로 변해야 한다.” 가오 관장의 말이다.
자오 부관장은 잡서관이 민간 학술의 연구기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100만권이 넘는 장서는 수적으로나 종류 면에서나 모두 중국 사립도서관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1만권의 창본, 5천권의 보권, 4천권의 고사는 중국 역사 연구의 귀중한 사료들이다. 조정에서 정식 편찬한 것은 아니지만 모두 백성들이 직접 보고 쓰고 새긴 것들로 이를 통해 역사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잡서관 담당자인 허(和) 부관장은 책꽂이 속 그 어떤 책을 펼쳐도 모두 보물을 펼치는 것이라 말한다. 청나라와 민국시기의 잡지 창간호가 4천권이나 있고 명나라 가정제(嘉靖帝) 때 원경(袁耿)의 가취당(嘉趣堂) 각본(刻本)인 『세설신어(世說新語)』와 청나라 가경제(嘉慶帝) 때의 각본 『이십사사(二十四史)』, 개화지(開化紙)에 인쇄된 『강희자전(康熙字典)』 등 진귀한 문헌들도 소장되어 있다. 이 사료들이 진열된 서가조차 모두 장서가들 집에 있었던 중화민국 시기의 유산이다.
중국사회과학원 학부위원이자 유명 철학가인 팡커리(方克立)는 잡서관 개관식에서 “특정 분야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잡서관에 있는 책들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료이다. 대형 도서관에도 없는 책들이 이 곳에는 다 있다. 또 잡서관의 책들은 보충자료 역할을 통해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교수들도 잡서관의 장서들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매년 박사생 제자들을 데려오겠다는 교수도 있다.
잡서관의 또 다른 중요 자료로 명인들의 서한과 친필 원고가 있다. 관리직원은 명인 서한과 친필 원고 보존관은 아직 개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유위(康有爲), 염석산(閻錫山), 호풍(胡風), 풍우란(馮友蘭), 애사기(艾思奇), 오옥장(吳玉章) 등 유명 인물들이 쓴 20만통의 서한 대부분은 아직 한창 정리작업 중이다.
이처럼 순수 공익 목적의 도서관이 어떤 자금으로 운영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오 부관장은 “시내에 있는 3000m² 규모의 부지는 임대료가 굉장히 비싸다. 이 점에서 쩌우위펑(鄒玉鳳) 훙창 디자인콘텐츠산업단지 총경리에게 감사 드린다. 게다가 신서관의 임대료는 무료다. 지금까지 인테리어, 가구, 조명 등에 200만 위안(약 3억7000만원) 정도가 들어간 상태고 연간 지출은 300만 위안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아직은 부담이 크지 않다. 하지만 장서가 증가하고 규모가 커지면 지출도 늘 수 밖에 없다. 신서관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고서관은 상대적으로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잡서관이 날로 유명해지자 잡서관의 공익모델을 다른 도시에 벤치마킹하려 하거나 가오 관장에게 각종 기부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가오 관장은 이를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공익이란 한 걸음씩 나아가야지 급하게 내디디면 탈이 난다. 모든 조건이 갖춰졌을 때 베이징 외 다른 지역에도 잡서관을 개관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오 관장은 개관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지만 아직 훼손된 책이 한 권도 없다며 뿌듯해했다. 관리직원에게 귀한 서적들을 열람하려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이곳을 찾는 분들은 책이 좋아서 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틀림없이 책을 소중히 여길 거란 믿음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름난 문화학자인 위단(于丹) 베이징사범대학 교수는 “독서에서 ‘잡(雜)’은 해박함이자 자양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잡서관은 도서관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수양’의 장소이다. 현대인들은 독서를 할 때 지식의 인스턴트식 섭취나 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중시한다. 하지만 기품과 소양은 특정한 이익과 목적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배양될 수 있다. 오늘날 중국에 전문가는 많지만 ‘잡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잡서관은 마치 정신적인 고향처럼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온다. 이곳이 그저 잡스러우면서 실리를 좇지 않는, 그런 순수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자신이 필요한 책을 찾아보러 올 것이고, 일반인들은 그저 구경하듯 아무런 부담없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잡서관에서 책을 통해 저마다 마음의 양식을 기를 것이고, 우리의 정신적 본거지를 깨닫고, 하나의 진정한 생활방식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날 오후, 창문으로 스며들어온 햇살이 잉크와 종이 내음으로 가득한 책상을 비췄다. 역사가 이곳에서 세월의 두께를 더할 때 문화의 발걸음은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빛바랜 페이지가 세월의 온기를 품고 있는 이 잡서관에는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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