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내실이 우선이다.”
지난 2009년 9월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은 한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는 2002년 회장 취임 후 지속적으로 전개한 그룹 사업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마무리해 한 숨 돌릴 수 있었던 시기였다.
한솔그룹은 1965년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가 새한제지를 인수해 출범시킨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를 모태로 한다. 1991년 호암의 딸 이인희 고문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한솔제지로 사명을 바꿨다. 계열 분리 후 한솔그룹은 금융·정보기술(IT) 분야에 적극 진출하며 재계 10위권을 넘볼 만큼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너무 빠른 몸집 불리기가 화를 자초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직후 그룹 전체가 흔들렸던 것. 이로인해 신성장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어렵게 따낸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체 한솔PCS를 KT에 매각하는 등 돈이 되는 사업과 자회사를 모두 내다팔았다. 이 가운데 조 회장이 가장 안타까워했던 부문이 신문용지 사업이었다.
“30년 동안 핵심 주력사업이었고 수익성이 가장 좋았던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해야 했던 점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돈벌이가 되는 사업부터 팔아야 했다”는 그는 “덕분에 10억달러를 유치했다. 당시 한국기업이 해외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은 금액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 이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조 회장이 얻은 교훈이 바로 “내실이 우선이다”였다.
조 회장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인수·합병(M&A)를 할 때는 시장에서 1, 2위를 할 역량이 되는지, 확실한 기술 등 차별적 우위 요소가 있는지 먼저 살피는 게 중요하다"며 상대가 아무리 예뻐 보여도 과잉 레버리지(차입)는 절대 금물이라고 했다.
또 “최고경영자(CEO)가 신규 사업에 대해 100% 알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무식한 편이 낫다. 전자라면 문제가 없을 테고 후자라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수 있어서다. 적당히 안다는 건 비즈니스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조 회장은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취임 당시 2조원 대에 머물던 한솔그룹을 5조원대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단순히 확장을 위한 사업 투자에는 절대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는 “기업을 평가하는 척도는 사이즈가 아니라 수익성”이라면서 “고객이 느끼는 가치가 상품가격보다 커야 하고 가격은 비용보다 커야 한다. 이 원칙에 맞게 사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시적인 구조조정도 지속하고 있다. 임직원이 준수해야 할 경영전략으로 운용효율의 극대화, 저수익사업의 상시 구조조정,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 등 3가지를 제시한 조 회장은, 저수익사업의 상시구조조정과 관련해 “모든 계열사와 사업부는 3년 내 자본비용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할 경우 스스로 구조조정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테니스 마니아다. 그는 “골프는 하위권 선수가 우승하는 이변이 가끔 일어나지만 테니스는 체력과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결코 우승할 수 없다"며 "기업도 재무구조 등 펀더멘털이 튼튼해야 위기에서 살아남고 호황기에 성장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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