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증시 추동력이 급격하게 약화되고 있다. 역대 최고점을 곧 경신할 것이란 기대감이 점점 옅어지면서 이제 3110선 사수도 위태로운 분위기다. 악재는 복합적이다. 미국 관세 영향에 미국발(發) 'AI 버블론'까지 겹치면서 박스권에 갇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더해 대주주 양도세 기준 하향을 골자로 한 증시 세제 개편안에 대한 실망감도 여전히 크다. 코스피가 정책 불확실성에 동력을 잃고 박스권에 갇히면서 '오천피' 꿈에서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는 추세다.
◇다시 무너진 3100선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지수는 3130.09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2% 넘게 떨어져 3079.27포인트까지 하락했다. 7월 9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스닥도 이날 1.31% 하락해 777.61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AI 버블' 우려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낙폭이 커졌다.시장에선 일시적 하락이 아닌 추세적 변화에 주목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빠르게 상승하던 흐름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에서다.
실제 이달 주요 20개국(G20) 대표 지수 중 코스피 수익률은 19위에 그쳤다. 이달 들어 코스피는 3.55% 떨어진 반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2.78%, 나스닥 2.73%, 일본 닛케이225 6.73% 등 강세를 보였다. 일본 주식시장은 지난 19일 약 13개월 만에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연일 반복되는 횡보장에 투자 열기도 식어가는 모양새다. 지난 15일 기준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시가총액 회전율은 5.24%로 집계됐다. 연중 최저치였다. 국내 증시 회전율은 지난 2월 16.96%까지 높아진 뒤 5월(11.55%)을 제외하고 주로 13∼15%대였다. 회전율은 시가총액 대비 거래 대금의 비율이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투자자 간 거래, 즉 손바뀜이 자주 일어났다는 의미다. 회전율이 낮으면 그 반대다.
◇'오천피' 언급 뜸해진 대통령실
최근 횡보장세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전후인 지난 6월 분위기와 180도 다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번째 경제 관련 외부 일정으로 한국거래소 방문을 택했다. 거래소를 찾아 주식 투자를 부동산에 버금가는 투자 수단으로 만들고, 불공정거래를 엄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수시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 정책, 입법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한 달 넘게 이 대통령의 주식 관련 발언은 뚝 끊겼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이 대통령이 코스피 5000을 언급한 건 지난 7월 3일 취임 한 달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이런 와중에 횡보장세에 기름을 끼얹은 건 오천피 공약과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이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개편안이 대표적이다. 대주주 기준을 50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한 뒤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라온 '대주주 양도소득세 하향 반대에 관한 청원' 동의자 수는 불과 1주일 만에 14만명을 넘겼다. 현재는 15만명을 바라보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특별한 악재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불확실한 이슈를 두고 차익 실현 매물이 출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대주주 양도세 기준도 현행 50억원이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나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상법개정안 등 시장이 기대하던 이벤트가 예상과 달리 부정적으로 발표될 경우 코스피 지수는 3100포인트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반등' 모멘텀 못 만드는 정부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증시 반등의 모멘텀을 못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대주주 양도세 관련해 여당과 시장이 일제히 '원상 복귀'를 요구하는데도 대통령실과 정부는 20일 넘게 입장을 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대주주 양도세 기준 관련) 다양한 의견을 듣고 지금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밝혔을 뿐이다.이를 두고 '미스터리'란 지적이 나온다. 여당과 시장 등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정부가 기존 입장을 고수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궁금증도 커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밝힌 대주주 기준 하향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는 약 2000억원인데, 이번 논란으로 인한 시가총액 감소분만 고려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세수 증대분이 생각보다 크기에 쉽사리 입장 선회를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과거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납부세액은 주식시장 호황에 따라 크게 움직였다. 지난해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신고 인원은 3359명으로 전년(3373명)과 비슷했지만, 납세액은 2조2266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2022년 코스피 수익률은 -24.89%, 2023년 수익률은 18.73%였다.
전문가는 대주주 양도세를 두고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을 증세의 원천으로 생각할지, 기업의 자금조달 원천이자 국민의 자산 소득 증대책으로 생각할지에 대한 당국의 선택이 필요하다"며 "지난 10년간 증세 필요성이 대두될 때마다 대주주 요건 하향으로 주식시장의 활력이 떨어져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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