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경제 문지훈 기자 = 금융권의 무차별 영업 관행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저금리 시대에 국민재산을 늘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출시된 금융상품들이 사실상 '깡통계좌'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깡통계좌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예고되면서 금융사들은 부랴부랴 계좌 폐지·증액에 나섰지만, 실적 위주의 영업 행태로 인한 신뢰 추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재산을 늘려줄 '만능통장'으로 기대를 받고 지난 3월 출시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대부분이 속이 빈 '깡통계좌'(소액계좌) 형태로 개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ISA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내놓은 정책금융 상품이다 보니, 금융사들은 출시 초기에 경쟁적으로 1000원 또는 1만원으로만 가입 유치하는 방식으로 계좌 수를 늘려왔다. 또 상품 판매 실적을 영업점 성과평가 지표(KPI)의 기준으로 삼아, 직원들에게 실적을 요구하는 '밀어내기식' 영업 관행도 깡통계좌를 늘리는데 한몫 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은행권의 ISA 계좌별 평균 잔액은 출시 초기 26만원으로 증권사(280만원)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6월말 81만원에 비해서는 3분의 1도 안된다.
특히 계좌당 평균 잔고가 1만원 이하인 경우는 89.3%를 차지할 정도로, 출시 초기 과다 경쟁으로 깡통계좌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중 NH농협은행(18만원), 신한은행(32만원), KEB하나은행(75만원) 등은 평균 잔고가 100만원도 되지 않았다. ISA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가입액이 100만원을 웃돌아야 하지만, 사실상 밀어내기식 영업으로 인한 소액계좌 증가로 '만능통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은행보다 평균 가입액은 크지만 깡통계좌가 적지 않았다.
출시 한 달간 증권사에서 개설된 ISA는 14만2800여개, 가입액은 3877억여원이다. 평균 가입액은 271만4000여원으로 은행의 6배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 계좌 중 1만원 이하 계좌가 36.4%인 5만2000여개에 달했다.
1000원 이하 계좌는 12.6%인 1만8000여개, 100원 이하 계좌는 7.2%인 1만200여개로 집계됐다.
문제는 이로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서민들의 재산을 늘려준다는 기본 취지를 상실하면서 폐해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의 직권조사가 예고되자, 은행들은 깡통계좌 폐지 및 증액에 나서고 있다.
금융사들은 지인들에게 권유해 개설된 깡통계좌를 해지하거나, 증액을 권유하는 식으로 감독당국의 눈을 피해가고 있다.
실제로 A은행은 ISA 깡통계좌를 보유한 고객에게 해지 또는 증액을 권유하고 있다. 심지어는 지인이 가입해준 계좌의 증액을 위해 자비까지 털고 있는 상황이다.
영업점에서 근무 중인 A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께 금감원 검사 가능성이 있으니 1만원 미만인 ISA 계좌를 해지하거나 금액을 1만원 이상으로 늘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ISA 고객 중 지인에게는 해지를 권유하고 있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직원들이 사비로 직접 증액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1만원 미만 ISA 계좌가 '미운용 자산'으로 사실상 없는 계좌나 마찬가지여서, 각종 비용만 소요되는 데다 금감원 검사 소식까지 나오자 은행들이 정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이 대해 금융권 한 관계자는 "악습처럼 계속돼 온 실적 위주 영업행태에 금융사들이 '신뢰 추락'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된 것"이라며 "특히 정책금융상품 판매에 대해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분위기를 조장하는 금융당국도 이같은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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