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는 최근 불고 있는 중금리대출 열풍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지난해부터 중금리를 표방한 대출 상품이 연이어 시장에 등장한 가운데 가처분소득 증대 없이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자신의 신용등급에 맞는 이자로 돈을 빌렸다고 해도 상환능력이 나아지지 않고선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중금리대출 상품인 ‘사잇돌대출’ 잔액이 한 달 만에 약 600억원을 돌파했다. 사잇돌대출은 9개 시중은행과 서울보증보험이 연계해 만든 중금리대출 상품이다. 신용등급 4~7등급에 속하는 중신용자를 위한 것으로 금리는 연 5~10% 수준이다.
P2P대출업체들도 지난해부터 8~10% 수준의 중금리를 내세우며 대출자들을 모으고 있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P2P대출 잔액은 지난달 29일 기준 약 19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부터 저축은행들도 중금리대출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SBI저축은행의 중금리대출 상품인 ‘사이다’는 지난 8일 출시한 지 7개월 만에 누적대출액 10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중금리대출 상품은 소위 ‘금리단층’이라고 불리는 신용등급과 적정 금리의 불일치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탄생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1~3등급의 신용이 좋은 소비자들은 은행에서 연 5% 미만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 그러나 중신자용자라고 불리는 4~7등급에 해당하는 이들은 은행 대출이 거절돼 2금융권에서 연 20%대의 고금리를 부담해야 했다.
중신용자들에게 중금리대출 상품 확산은 분명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건전한 금융시장 육성과 서민을 위한 근본 대책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중금리대출 또한 대출 상품의 일부분으로 이를 사용하면 결국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개개인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빚’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중금리대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반면, 가처분소득은 크게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30만6000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427만원) 대비 0.8% 증가했지만 물가상승폭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0% 성장한 셈이다.
평균소비성향 역시 70.9%를 기록, 지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저치를 갱신했다. 평균소비성향은 가처분소득 대비 소비지출을 의미하는데 △2012년 74.1% △2013년 73.4% △2014년 72.9% △2015년 71.9% 등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70.9%를 기록할 경우, 가구당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100만원이 있다면 그 중 70만9000원만 소비했다는 뜻이다.
4~7등급에 해당하는 중신용자 비중은 갈수록 감소하는 가운데 중금리대출 상품만 급격히 증가해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4~7등급의 인원 비중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각 등급별 비율은 △4등급 12.5% △5등급 12.5% △6등급 7.6% △7등급 5.3%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4등급 12.5% △5등급 13.4% △6등급 7.8% △7등급 6.0% 등을 기록해 중신용자 비중이 전년 대비 감소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중금리대출 자체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게 아니라 정책당국이 인위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시장 형성을 유도한 측면이 강하다”며 “이 때문에 상품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중금리상품 대부분이 담보대출이 아닌 신용대출인 것을 고려하면 소득이 불안정한 계층들의 사용 빈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근본적으로 가처분소득을 증대시키는 큰 그림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박사 역시 “저금리로 인해 수익모델이 한계에 이르자 금융사들이 틈새시장을 찾아 너도나도 중금리대출 시장에 뛰어든 측면이 있다”며 “중금리대출 상품의 성공은 결국 연체율 관리에 달려 있기 때문에 아직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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