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이 앞서 발표된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건 아니지만 업계는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들은 해당 판결문을 검토한 뒤 입장을 정한다는 방침이여서 당분간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는 13일 알리안츠생명이 A씨 유족들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파기했다.
A씨는 2004년 2월 알리안츠생명과 종신보험 계약을 체결하면서 재해사망특약을 넣었다. 재해사망특약에는 '자신을 스스로 해치는 경우'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을 뒀다. 다만 예외의 예외 규정을 통해 '특약의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뒤 자살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명시했다.
알리안츠생명은 지급 청구권 2년이 지났기 때문에 재해보험사망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재해사망보험금 청구권 존재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자살은 보험금을 지급해야하는 사고라고 볼 수 없다"며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3부는 2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계약이 체결되고 2년이 지난 후에 자살한 경우는 약관에 따라 보험금 지급사유로 이해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쟁점이 됐던 소멸시효 경과와 관련된 사측의 입장은 항소심에서 항변하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는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0일 비슷한 사유로 소송을 했던 교보생명의 판결과 정반대의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앞서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청구권이 소멸돼 보험사가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의 입장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자살보험금의 예외없는 지급을 강조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는 보험사에 대해 강력한 행정제재를 예고한 상태다. 정치권도 자살보험금 특별법을 만들겠다며 보험사를 압박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사 관계자는 "대법원 판단과 별개로 금감원과 정치권의 압박이 계속되는데다 보험사별로 입장이 달라 곤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이번 판결이 교보생명과 동일한 사례인지 불분명 하기 때문에 판결문을 검토한 뒤 보험사별로 내부 지침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험사별로 지급 입장이 달라 형평성에 대한 논란도 야기되고 있다. 삼성·교보·한화생명을 비롯한 6개의 생보사는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ING·신한·하나·동부 등 14개 생보사는 지급을 결정했다.
같은 약관을 적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사에 따라 지급 기준이 달라지면 소비자 불만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소멸시효에 관련된 대법원의 앞선 판결을 뒤집은 것은 아니다"라며 "약관 조항 사이에 해석 충돌로 보여지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에서 '소멸시효 지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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