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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 김우굉 선생 한글 연시조 시비(詩碑) 제막식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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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0-1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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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중기 문신인 개암 김우굉 선생의 선비정신 기려

[사진=상주시 제공]

아주경제 피민호 기자 = 경상북도 상주시는 지난 15일 중동면 회상리 맷골에서 조선중기 문신인 개암 김우굉(開巖 金宇宏) 선생이 지은 한글 연시조인 개암십이곡 시비(詩碑) 제막식과 개암정(開巖亭) 중창(重創) 준공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이정백 상주시장과 김종태 국회의원, 김현권 국회의원(의성김씨), 시의원, 상주향교 전교를 비롯한 유림, 속수서원과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개암 김우굉 선생은 남명 조식 · 퇴계 이황 선생문하에서 절차탁마해 명종 21년(1566) 별시 문과에 서애 류성룡 선생과 동반 급제 후 홍문관부제학, 충청도관찰사, 광주목사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청백리로 이름이 높다.

선조 18년(1585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중동면 회상리 맷골의 낙동강가에 개암정(開巖亭 : 이곳의 바위가 입이 벌어진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개암이라고 호로 삼음)을 짓고 낙동강을 벗 삼아 선비의 강호지락을 노래한 ‘개암십이곡’을 지었다.

‘개암십이곡(開巖十二曲)’은 현재 8곡만이 전해지고 있는데 첫 번째 곡은 ‘개암’이라는 제목으로 지어졌다.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 “마치 큰고래가 바다를 들이마시는 듯하다”고도 하고, “대장부가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듯하다”고도 한다고 한 것은 동서분당 이후 동인과 서인이 치열한 정권 다툼을 벌였던 당대 상황을 비판한 것으로 선비의 곧은 지조를 엿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권두환, 조해숙 교수가 개암공의 7대손 소암공(鎭東 1727~1800)의 필사본 추모록에서 개암십이곡에 대한 기록을 최초로 발견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연시조라는 점에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의의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정백 상주시장은 “시비와 개암정은 신낙동강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관광인프라이자 기념비적인 문학의 산실로 상주시의 위상을 드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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