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서울 소재 국립대를 졸업한 김 모씨(28·남)는 2년째 취업 준비 중 이다. 대기업 입사에 번번이 실패, 중소기업으로 눈을 낮춰볼까도 생각했지만 대학 동기들의 합격 소식에 여전히 대기업 취업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복지 등의 격차는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대학 동기들이 대기업에 들어가 받는 대우와 중소기업을 비교하면 차라리 취업이 조금 늦더라도 스펙을 더 쌓아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게 낫다"고 말한다.
청년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넘나드는 고용한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실업자 3명 중 1명은 4년제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3분기 기준 실업자는 모두 98만5000명으로 이중 32%인 31만5000명이 4년제 대학 이상 졸업자로 집계됐다.
대졸 실업자 규모는 3분기 기준으로는 1999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30만명을 돌파했다. 전체 실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사상 최대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직후인 1999년 3분기 전체 실업자는 133만2000명에 달했지만 4년제 대학 졸업자는 12.1%인 16만10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우리 사회에 빠른 고학력화가 진행되면서 실업자 중 대졸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이 상승했다.
2005년 15.3%였던 실업자 중 대졸자의 비중은 2006년 19.9%로 급상승한 뒤 2008년 20.5%로 20%대에 올라섰다. 이후 2010년 23.3%, 2012년 26.8%, 2013년 28.6%, 2015년 28.8%에 이어 올해는 30%를 돌파했다.
전문대 졸업자를 포함할 경우 3분기 전체 실업자(98만5000명) 중 대졸자(43만8000명)의 비중은 무려 44.5%에 달했다.
이런 고학력 실업자의 증가는 우리나라의 학력 인플레이션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고학력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2014년 기준 25~34세의 전문대졸 이상 학력의 비율은 68%에 달한다.
OECD 평균(41%)은 물론 2위인 캐나다(58%)와 큰 격차를 보인다. 일본(37%)과는 두 배 가깝게 벌어진다.
문제는 넘쳐나는 고학력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모자라, 취업자가 아닌 '취업준비생'으로 남아 있는 청년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저성장 추세가 이어지면서 기업이 비싼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대졸 직업 채용을 꺼리고 있는 분위기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를 대변하듯 하루 2∼3시간 일하거나 일주일에 서너 차례 근무하는 초단기 근로자는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3분기 기준 일주일 근로시간이 1시간∼17시간인 취업자는 134만3000명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만1000명이나 급증했다.
초단기 근로자가 늘어나는 것은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을 고용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장려한 결과라는 분석이나, 비자발적으로 초단기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몰리게 된 경우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며 사업체 운영이 어려워진 기업이 비용 부담이 큰 상용직 대신 필요한 인력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아르바이트생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계 관계자는 "청년의 고용률, 실업률 등의 숫자만 바라보고 내놓는 포퓰리즘성 정책으로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며 "양질의 일자리 창출 노력과 함께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기술과 능력이 있으면 원하는 직장에서 대졸자와 큰 격차 없이 잘 살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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