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올해로 30년을 맞는 87년 체제를 종식시키고, 이제는 시대변화에 걸맞는 새로운 사회의 틀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이에 따른 헌법개정 논의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뒤엎는 권력구조 개편이다.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거론되는 방안은 다양하다.
이와 함께 나오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론은 가장 공감을 얻고 있는 주장이다. 당장 차기 대선부터 5년인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 통치구조를 변경한 다음, 2020년부터 총선과 대선을 같이 치르자는 게 주요 골자다. 그러나 이 역시 이견이 존재하는만큼,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 진행상황을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비용 감축·책임 정치 가능…박원순 "새로운 건국 만들자"
지난해 20대 총선은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대통령은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새누리당은 153석(18대 총선)에서 122석으로 의석을 20% 이상 잃었다. 그렇게 지난 한 해는 보수정당의 대통령과 '여소야대'의 국회가 공존하는 한 해가 됐다.
총선과 대선을 같이 치르게 되면 총선에서 승리하는 정당이 대통령과 엇갈릴 확률은 크게 낮아진다.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국정 과제를 집권여당이 뒷받침하며 책임감있게 정치를 펼쳐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비용적 측면에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올해 예산을 편성하며 대통령 선거관리 비용으로 1803억5500만원을 책정했다. 이는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때보다 341억2700만원 늘어난 수준이다. 이전에는 없었던 사전투표와 선상투표 도입, 여론조사 심의에 드는 비용과 인건비 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지난해 20대 총선 당시 선거비용만 327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내놓은 적 있다. 선거 직후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 선거비용 총액만 1130억4404만여 원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금액은 단순히 선거를 치르는데 드는 실무적 비용이다.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갈등과 이를 추스리기 위한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하면 선거를 치르는데 감당해야 할 대가는 크다. 총선과 대선을 함께 실시하면 지나치게 소모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선 출마를 사실상 선언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23일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2019년이 임시정부 건국 100주년이다, 그 시기를 계기로 새로운 건국을 만들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기 대통령 임기가) 3년 정도면 짧다거나 대통령 위상이 적어지지 않냐는 우려도 있는데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정부보다 중요한 일을 하게 될 정부"라고 덧붙였다. 개헌으로 2020년 총·대선을 함께 치르며 '포스트 87년 체제'를 시작하자는 주장이다.
◆ 최선의 대안 아니란 지적도…文 "임기단축은 정치공학적 얘기"
다만 이러한 방안이 최선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러 대통령과 다수당이 단단한 결속체로 함께 가는 것은 좋으나,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는 총선을 통해 정부의 현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를 단행해 권력 견제가 가능하다.
게다가 단순히 비용 문제로 대통령과 의원의 임기를 맞춰 대통령과 정당을 맞추자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현재의 개헌논의와 결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이원집정부제에서 대통령과 총리 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 등도 있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9일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임기단축 주장에 대해 "다분히 정치공학적 얘기"라며,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한다면 다음 정부는 과도정부밖에 되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그러면서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대청산과 개혁을 해내려면 5년 임기도 짧다"고 주장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통령 임기단축과 총대선 동시 실시 안에 대해 "절대적 대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대통령이 중간에 임기가 끝날 경우 부통령이 잔여임기를 승계하는 시스템으로 갈 때만 임기를 일치시키는 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내각제나 분권형제로 가면서 의회 해산을 한다거나, 지금처럼 대통령 궐위 시 임기를 맞춰도 결국 바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갈등이 많지 않은 범위 내에서 중요한 사안으로 일단 개헌을 한다면 3~4개월 내에 개헌이 가능할 것"이라며 "대선을 위한 개헌, 특정정당이나 개인을 위한 개헌이 되면 안 된다. 국회 개헌특위에서 논의하면서 정치권 뿐 아니라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