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국민연금이 대우조선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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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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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정호 기자=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관계자에게 물었다.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 요구와 관련해 얽힌 상황을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지, 아니면 정치논리로 풀어야 하는지.

"연금논리로 풀어야 하죠. 국민의 연금논리로요."

국민연금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게 우선이라는 뜻이다. 국민의 노후자산을 지키는 게 국민연금의 역할이다. 운용원칙은 맡은 기금으로 이익을 최대화하고, 손실은 최소로 줄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이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줄이는 방향일까. 당장 눈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개다. 17, 18일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 참석해 채무재조정안에 찬성하는 방법, 그리고 참석하지 않거나 참석해 반대 혹은 기권표를 던지는 것.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현재의 채무조정안에 찬성할 경우 2682억원, 거부하면 3887억원의 평가손실을 입는다. 조선업황이 과거 수준을 회복하고 일감이 늘어 대우조선 주가가 오르면 손실이 줄어들 수 있지만 현재로선 이를 낙관할 수 없다.

심지어 대우조선은 지난달 29일 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한 2016년 회계감사 보고서에서 ‘한정’ 의견을 받은 상태다. 이쯤 되면 찬성과 반대 중 어느 선택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인지 딱 잘라 판단하기 어렵다.

일단 대우조선 회사채 투자자의 80%가량이 이미 법원에 공탁을 신청한 상태라 국민연금의 사채권자 집회 참석은 기정사실로 볼 수 있다. 찬성과 반대(기권) 어느 의견을 보일지만 남았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우리가 판단할 기준과 근거를 줘야 하는데 언론에 공개된 내용 정도가 전부다. 회계법인조차 분석을 포기한 자료를 주면서 중대사안을 빨리 결정하라고 압박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상황의 급박함을 이유로 국민연금이 독립적 판단을 내릴 수 없도록 코너로 몰고 있다.

독립성이 강화되면 언제 어떤 상황이 닥쳐도 국민연금은 손실을 줄이는 쪽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찬성과 반대 중 어느 한 방향의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고 그 결과도 존중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과거에도 외압에 휘둘려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낙인이 너무 깊게 새겨졌다.

또 외압이 가해지고 있다. 물론 과거와 똑같은 성격의 외압은 아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본연의 역할이 훼손당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정부는 대우조선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국민연금에 희생을 강요할 작정인가. 간과하면 안 된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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