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슬픈 것은 완치가 없고 진행 속도만 늦출 수 있다는 데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010년부터 복용하고 있다고 알려진 치매약도 진행을 더디게 하는 약이지 근본적인 치료제는 아니다. 이처럼 한두 해 앓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숨지기 전까지 이어져 환자 자신도, 가족도 지치게 한다.
실종이나 방임·폭력 같은 노인학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실종된 치매 환자는 9800여명에 달했다. 2015년 신고된 노인학대 사례 3800여건 중 치매 환자 학대 사례가 1000여건으로 27%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없어지는 것이다. 치매에 걸리면 판단력이 크게 떨어지다 보니 치료법이나 과정 등을 환자 스스로가 아니라 자녀나 배우자가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치매 환자는 최근 5년간 매년 11.7%씩 늘고 있다. 2017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환자는 72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노인인구 10명 가운데 1명이 치매 환자인 것이다. 인구고령화에 따라 치매 환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는 100만명을 넘어서는 데 이어 2041년엔 200만명, 2050년에는 27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장미대선'을 거쳐 지난달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민이 가장 원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운영한 정책 홍보 사이트인 '문재인 1번가'에서 10만건이 넘는 '좋아요'를 받은 공약 중 하나였다.
치매국가책임제의 세부 내용을 보면 지역마다 '치매지원센터'를 설치해 치매를 조기에 검진하고 돌봄서비스 제공하도록 했다. 현재 치매지원센터는 전국에 47개밖에 없다. 중증치매 환자를 전담할 공공치매전문병원을 만들고 공공노인요양시설을 늘려 검진부터 치료, 요양에 이르는 치매의 모든 과정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안도 담겨 있다.
또 치매 치료비의 90%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고, 본인부담 상한제를 도입해 치매에 드는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정책 추진에 강한 의지를 수차례 드러냈다. 지난 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선 6월 중으로 이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해 보고하도록 했다. 다음 날인 2일에는 취임 후 세 번째 '찾아가는 대통령' 행사로 서울 세곡동 서울요양원을 찾아 치매 환자와 가족,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치매는 이제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것으로, 내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안심할 수 있게 약속드리고 책임을 지겠다"라고 강조했다.
이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수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치매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큰 고통을 안기는 것은 물론 사회경제적 손실이 막대한 질환이다.
2015년 치매 환자 1명을 치료하는 데 쓰인 비용은 2033만원, 전체 환자로 보면 13조2000억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의 0.9%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50년엔 총비용이 106조5000억원으로 늘며 GDP의 3.8%를 차지할 전망이다.
고령화시대, 국민건강을 위해 그리고 사회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예산이나 포퓰리즘을 핑계로 발목 잡아서는 안 될 정책이 치매국가책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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