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항공 산업에 대한 수식어들이다. 중국의 항공 산업이 오랜 활주로 주행 시간을 보낸 끝에 이륙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궤도에 오른 결정체는 중국 최초로 제작에 성공한 중대형 상용여객기 C919다. 최대 항속거리 5555㎞인 C919는 보잉 B737이나 에어버스 A320과 비슷한 기종이다. C919의 지난 5월 첫 비행 성공은 중국 민간항공산업의 발전 역사에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이 됐다. C919는 내년 2월 정식 취항할 예정이다.
C919의 비행 성공은 중국이 더 이상 짝퉁의 나라, 모방의 나라가 아니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원래 자이언트 스텝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이용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은 순간을 표현한 말이다. 고작 항공기 한 대의 제작과 비행 성공에 자이언트 스텝이라는 표현까지 쓴 것은 인류가 달에 첫 발을 내딛은 그 위대한 순간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 항공 산업 역사에서 갖는 의미가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이를 계기로 중국 항공 산업의 거대한 도약(Giant Leap)이 예상된다. 중국 항공 산업의 비약적 성장으로 인해 세계 항공 산업 판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항공기 시장, 보잉·에어버스가 독점
현재 중국 내 항공기 시장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보잉사와 유럽의 에어버스가 양분해서 거의 독식하고 있는 형국이다. 항공 산업 진입 문턱이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 중국 입장에서는 그 높고 까다로운 문턱을 넘어섰으니 어찌 큰 일이 아니겠는가.
중국 항공 산업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는 숫자를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중국 통계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항공기 이용객은 2016년 기준 4억8776만명으로 미국 항공기 이용객 6억5700만명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한국은 1억391만명으로 1948년 첫 민간 항공기 취항 이후 68년 만에 1억명 시대를 열었다.
중국 항공 산업은 성장속도도 빠르다. 지난 10년간 이용객 수는 2.5배 증가했으며, 연평균 약 10%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전체 항공기 운항노선은 3794개. 그 중 국내선이 3055개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중국 항공기 시장을 보잉과 에어버스가 양분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중국 항공사가 보유한 민간용 비행기는 2933대이며, 대부분이 보잉과 에어버스 여객기다. 중국은 항공기 이용객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지난해 보잉과 에어버스로부터 여객기 351대를 새로 구입하기도 했다.
차이나 머니(중국 자본)의 위력은 세계 항공기 시장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중국 국가주석이 ‘항공기 쇼핑’(보잉이나 에어버스 항공기 대량 구입)을 외교카드로 사용할 정도다. 보잉과 에어버스에게는 중국이 그만큼 중요한 VIP 고객이다. 실제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 2015년 미국 방문 시 300대의 보잉 여객기를 구입하며 보잉으로부터 중국 조립설비 투자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중국의 항공기 시장 미래 전망도 장밋빛이다. 계산 빠른 보잉과 에어버스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에어버스는 이미 10년 전인 2008년 톈진(天津)에 A320 여객기 조립센터를 설립했다. 2017년 5월 현재까지 총 320대의 비행기를 생산했다. 오는 9월에는 A330라인의 첫 인도를 앞두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A320neo 생산라인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보잉도 올해 저장(浙江)성 저우산(舟山)에 B737 여객기 조립센터를 착공했다.
보잉과 에어버스의 이 같은 조치는 치밀한 전망조사에 따른 것이다. 두 회사는 2009년에 향후 20년(2009~2028년) 간 세계 민간 항공기 시장에 대한 전망보고서를 내놨다. 중국과 관련한 양사의 조사결과는 일치했다. 2028년까지 중국에 3800대 가량의 대형 항공기가 신규로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중국 정부도 항공 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항공 산업이야말로 ‘첨단기술 용복합의 꽃’이며 기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관문이라는 판단에서다. ‘경제 발전 촉진제’로서의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 항공기 제조업은 기술과 인재, 자본이 집중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는 산업이다.
중국 정부가 항공 산업 발전에 목을 매는 밑바탕에는 ‘자존심 회복’도 깔려 있다. 외국산 비행기들이 자국의 항공을 활개치고 날아다니는 것을 보는 일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중국 항공기 시장의 규모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자국 기업의 ‘시장 탈환’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자체 대형 항공기 제작을 시도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에 따르면 1970년 여름,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상하이(上海)를 시찰하며 “상하이는 공업 기초가 탄탄하니 비행기를 제조하라”고 지시한 것이 계기가 됐다. ‘708 공정’이라 불린 대형 항공기 제조 사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윈(運)-10’이 탄생했다. 윈-10은 중국 항공 역사상 중국 항공 분야 종사자들이 혼신의 노력으로 개발한 진정한 의미의 중국 대형 항공기로 평가된다. 그렇게 태어난 윈-10의 운명은 기구했다. 장시간 시험비행에도 성공했지만 자금조달 등의 문제로 1980년대 중반 조용히 사라졌다.
이후 세계 민간 항공기 시장에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했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중국은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술과 자본을 가진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 양사가 세계의 하늘을 독점했다.
중국은 매년 거액을 들여 두 회사의 항공기를 구입해야 했다. 대부분은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관계 유지를 위한 구입도 있었다. 최근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 해소(미국에 대한 무역흑자 축소)를 위해 보잉의 최신 여객기 ‘737 맥스 10’을 60대 넘게 주문한 것도 ‘관계’ 때문이다.
◆C919 시험 비행 성공, 세계 항공 시장 지각변동 예고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초 대형 항공기를 자체 제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2008년 중국 국무원 국유자산관리위원회는 소형 비행기 ARJ21를 제작하던 ‘중국상용항공비기유한공사’와 공동으로 190억 위안(약 3조2000억원)을 출자해 중국 대표 항공기 제조업체인 코맥(COMAC)을 설립했다. COMAC의 실질적인 대주주가 중국 국무원인 셈이다.
그 COMAC이 2008년 제작에 돌입해 최근 성공리에 시험 비행까지 마친 것이 C919다. ‘C’는 China(또는 제조사 COMAC)의 앞글자이며 ‘919’는 ‘久(오래토록 영원하다)+190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C919는 기체 내 복도가 하나인 중대형 여객기로 단거리 국제선이나 국내선에 이용될 전망이다.
중국이 최초로 중대형 상용여객기 제작에 성공했지만 기술적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논란의 핵심은 C919에 들어간 중국 부품은 20%에 불과하며, 주요 부품도 모두 외국산이라는 것. 한 마디로 ‘기술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COMAC이 동력시스템 설계, 구조 설계, 시스템 설계 등 100여개의 관련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이 2015년 발표한 ‘중국 제조 2025’에서도 항공우주산업을 10대 중점산업 중 한 가지로 명시했다. 항공 산업의 완전한 밸류 체인(value chain) 구축이 목표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항공 산업을 국내 수요와 운용 경험을 토대로 한 기술력 개선을 통해 성장시킨 다음 그 기반을 토대로 해외 항공기 시장을 공략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트라에 따르면 COMAC은 지난 5월 현재 총 24개사로부터 600대의 주문을 받았다. 에어차이나, 동방항공, 남방항공, 해남항공 등 중국 항공사가 135대를 주문했으며, 국유 은행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금융리스 기관 두 곳이 431대를 주문했다. GE 캐피탈 계열사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 항공사 리스 회사인 미국의 GECAS, 독일의 Puren Airlines, 태국의 City Airways도 총 34대를 주문했다.
C919의 가격은 5000만 달러(약 560억원) 이하로 경쟁 기종에 비해 1000만~2000만 달러 정도 저렴하게 책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추세인 저가항공사 증가도 중국의 항공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순풍에 돛 단’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정부도 해외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지난 6월 독일 방문 시 메르켈 총리에게 C919의 EU(유럽연합) 내항증 허가 지원을 요청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COMAC은 C919 시범 비행 성공 이후 러시아연합공사(UAC)와 합작으로 중러국제상용항공기공사(CRAIC)를 설립하고 후속모델인 C929 개발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C929는 280개 좌석을 가진 항공기로 항속거리는 1만2000㎞다. 장거리 노선에 활용될 예정이다. 120억 달러가 투입돼 2025년에 첫 시범 비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항공 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 톈진이다. 중국은 톈진 경제특구인 빈하이신구(濱海新區)에 오는 2020년 목표로 30㎢ 면적의 항공우주산업단지를 만들고 있다. 중국의 목표는 ‘항공성’이라고 불리는 이 항공우주산업기지를 세계의 항공우주단지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중국항공공업그룹, 중국항공과기그룹, 중국항공과공그룹 등 중국 항공 산업을 이끌고 있는 선두주자들이 위치해 있다. ‘항공성’의 항공 산업 규모는 2020년에는 1400억 위안(약 2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기 제작 분야는 한국이 자금조달 문제 등의 이유로 포기한 시장이다. 그 시장에서 중국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우리 시트콤 제목처럼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가 사이좋게 나눠 먹고 있는 세계의 하늘 길에 ‘ABC 구도(Airbus-Boeing-COMAC)’를 구축하겠다는 ‘중국몽(夢)’이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