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物이 必先腐也 而後에 蟲이 生之니라"
함원(含園) 전통문화연구회 상임이사
"식물(食物)이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야 벌레가 그곳에서 생긴다."
소동파(蘇東坡)가 '범증론(范增論)'에서 한 말이다.
재판부는 "부패한 최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끄러운 정경유착"이라고 단죄했고, 삼성 변호인 측은 "명확한 증거 제시도 없이 묵시적 청탁만으로 선고했다"고 항변한다. 앞으로 2심 재판 때까지 검찰과 삼성 변호인 측은 이 지점에서 죽기 살기로 다툴 것이다. 온갖 법리가 동원되고 정황과 증거가 제시될 것이다. 이쪽 말을 들어보면 이쪽이 옳은 듯하고 또 저쪽 말을 들어보면 저쪽도 일리가 있는 듯할 것이다. '세기의 재판'답게 관심도 뜨겁고 양쪽 다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이니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재판을 지켜보는 우리는 동파(東坡)의 말을 염두에 두고 양쪽의 싸움과 2심 재판을 바라보면 어떨까?
소동파의 '범증론'은 항우(項羽)의 최고 모사(謀士)인 범증의 인물됨과 행적을 논하고 평가한 글이다. 항우는 유방(劉邦)과 진(秦) 제국을 무너뜨리면서 천하를 두고 싸웠으며, 범증은 항우의 최고 책사답게 유방이 최고 적수니 죽여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진언했으나 항우가 이를 실행하지 못했고··· 오히려 유방 측의 간계(間計, 이간책)에 넘어가 범증을 멀리하자 범증은 (천하를 다투는) '게임은 끝났다'(天下大事定矣, 천하대사정의. 천하의 큰일이 정해져 버렸다)며 항우 곁을 떠났다. 결과는 우리 다 아는 바다.
동파는 항우가 70 노책사 범증의 충정을 모르고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유방 측의 간계에 들어올 틈이 있었다고 분석하며 物 必先腐也 而後 蟲 生之라 했다. 물(物)은 누구나 의심하는 항우의 마음이고 충(蟲)은 유방 측의 이간계(離間計).
우리가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는 삼성, 최고 재벌 기업과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던 대통령. 이 둘은 현재 뇌물죄 혐의의 피고인으로 재판중.
누가 물(物)이고 누가 충(蟲)인가. 삼성은 청와대 권력의 강요에 마지못해 돈을 줬다는 피해자 논리를 펴왔다. 결코 선부(先腐, 먼저 썩은 고기)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면 박근혜의 청와대가 선부(先腐)인가? 먼저 썩은 음식물이 있은 연후에 그곳에 벌레가 생기는 것은 천하의 공변된 이치이고 자연의 이치인데··· 선후(先後)가 문제인가? 선(先)은 선(先)이고 후(後)는 후(後)일 뿐이다. 인간의 어리석은 뇌에서 나올 온갖 법리가 어찌 천하 사람, 공중(公衆)이 누구나 떳떳하게 말하는 이 이치를 거스를 수 있을까.
누가 먼저 썩었다고 생각하시는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