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만큼 오해를 많이 받는 제품도 없을 겁니다.”
붉은 신선로 문양이 박힌 봉지 속 하얀 가루. 우리는 단번에 미원을 떠올린다. 1956년 국내 처음 모습을 보인 미원은 환갑이 넘도록 우리의 식탁을 지배하고 있다. 일명 마법의 가루로 불릴 만큼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리며, 어떤 재료도 맛있게 바꿔준다.
하지만 미원만큼 오랫동안 다양한 소문에 시달린 제품도 흔치 않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부터 정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까지 루머도 가지각색이다. 기자는 지난달 경기도 이천 대상 중앙연구소를 방문해 이동준 연구기술본부장(상무)이 전해주는 미원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해성 논란의 미원, 어떤 물질인가?
우리가 흔히 먹는 미원은 MSG(monosodium glutamate)라는 단어로 더 익숙한 편이다. 인공감미료의 한 종류인 MSG는 소금의 구성 성분인 나트륨(Na) 원자 하나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성분인 글루타민산으로 이뤄졌다. MSG는 식품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인위적으로 추출해내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기존에 먹는 다양한 식품 어디에나 함유되어 있는 물질이다.
이 본부장은 “MSG는 사탕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발효조미료”라며 “사탕수수에서 얻은 원당을 미생물로 발효하는 과정을 거쳐 ‘글루타민산’ 발효액을 남기고, 이것을 나트륨과 결합시켜 글루타민산나트륨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글루타민산나트륨 용액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농축‧건조시키면 미원이 탄생하는 것”이라며 “사실 미원의 주성분인 글루타민산은 사람의 모유에도 들어 있고 표고버섯, 멸치, 쇠고기 등 자연 재료 어디서나 풍부하게 함유된 물질”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미원은 이미 우리가 다른 경로를 통해서 흔히 먹고 있는 물질이며 단지 기술의 힘을 빌려 추출해 낸 결정체라는 설명이다.
이 본부장은 미원이 오랫동안 시달려온 유해성 논란에 관해서도 잘못된 정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유해성 논란이 생기게 된 스토리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업계 내 MSG의 유해성 논란이 점화된 계기는 1993년 당시 럭키라는 회사가 ‘맛그린’ 조미료를 시판한 것이었다. 맛그린이 경쟁사와 마케팅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MSG의 유해 가능성을 지적, 식품회사들조차 자신들의 제품에서 MSG를 제거하면서 부정적 인식이 자리잡았다는 것.
물론 관련 사건은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럭키 맛그린에 대해 광고시정명령을 내리고 경쟁업체에게 사과할 것을 지시했다. 다만 이미 상황이 악화된 이후였다. 또 최근에는 한 종편채널에서 MSG를 사용하지 않는 식당을 ‘착한식당’으로 규정하면서 MSG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못 박기도 했다.
이 본부장은 “전 세계적으로 MSG의 연간 소비량은 320만t에 달할 정로도 우리 모두 일상적으로 섭취하고 있다”며 “2010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MSG의 무해성에 관해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맛 각인시킨 미원의 저력
국내의 맛을 평정한 것으로 여겨지는 미원의 해외시장 성적표는 어떨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해외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이 많은 이 본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재미난 에피소드를 몇 개 들려줬다.
미원은 1973년 인도네시아에 공장 전체를 수출하는 형태로 진출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 외국 기업이 투자를 하는 경우가 처음이었지만 동남아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본 미원은 과감하게 동남아 시장의 입맛 길들이기에 나선 것. 이 본부장은 2004년 인도네시아 수라바야공장장으로 취임하며 해외시장의 경험을 쌓아갔다.
이 본부장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지역은 한국의 부산과 같이 제2의 도시라고 보면 된다”며 “섬이 많은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교통상황에도 불구하고 미원의 영업사원들이 봇짐을 지고 다니면서 일일이 브랜드를 알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장장으로 근무했던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인도네시아의 입국이 까다로운 편이었지만 미원의 직원이라는 이유로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6년 처음 공장을 가동했던 베트남은 당시만 해도 사회주의 색채가 강했다. 당연히 한국과는 서먹서먹한 관계에 놓여 있었지만 하노이 공항에서 미원베트남 근무자라고 하면 호의적으로 대접을 받았다고 이 본부장은 털어놨다.
특히 국물이 많은 동남아 음식 특성상 미원이 침투할 공간이 많다는 게 이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요리 중 ‘박소’라고 불리는 고기완자 수프나, 베트남의 쌀국수 같은 경우는 미원이 빠지고는 맛을 낼 수 없다”며 “베트남에서는 외부의 귀한 손님이 올 경우 미원을 종지에 담아 다양한 음식에 찍어먹도록 따로 대접하는 용도로도 쓴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원은 해외시장에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놀랍게도 미원의 매출액은 국내보다 해외가 더 높다. 국내 매출은 2015년 1027억원으로 집계됐지만 해외 매출은 매년 1500억원 이상을 기록 중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는 각각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다.
◆ 한국의 식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미원’
이 본부장은 조미료 연구에 인생을 바친 소회도 털어놨다. 자신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에는 일부 제약회사를 제외하면 발효기술을 연구하는 회사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원은 당시에도 발효 연구를 통해 장류 개발에 힘을 쏟고 있던 유일한 식품 회사였다.
미원이 우리의 식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 본부장은 미원이 우리의 식문화를 한 단계 도약시킨 물질이라고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과거 60~70년대 배고픔에 허덕이는 과정에서 미원은 국민들에게 고급스런 맛의 평등한 보급을 이뤄냈다는 것.
보통 국민의 소득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맛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미식문화가 발달한다. 미원은 이 과정을 좀 더 단축시켜 향후 맛의 지평을 여는 조미료로 줄곧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본부장은 미원이 지금도 한 차원 더 높은 맛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 없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들의 다양한 입맛을 고려해 각각의 기호를 배려한 제품들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며 “핵산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첨가제를 넣지 않는 걸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천연 조미료도 개발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드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본부장은 조미료를 쓴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여기는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원의 성분은 어느 원물에나 함유된 만큼, 요리에 미원을 사용하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다”며 “적당량의 미원을 사용하면 요리의 등급을 한 단계 더 올려 특 에이급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약력
이동준 (1957년 5월 생) 대상(주) 소재BU 연구기술본부장(상무)
● 학 력
1986. 2월 한양대학교 이과대학 생물학 석사
1981. 2월 한양대학교 이과대학 생물학 학사
1976. 2월 여의도 고등학교 졸업
●경 력 (대상(주))
2016. 11월 ~ 현재 소재BU 연구기술본부장(상무)
2015. 12월 ~ 2016. 10월 중앙연구소장(상무)
2009. 7월 ~ 2015. 11월 BIO사업총괄 BIO기술실장(상무)
2007. 4월 ~ 2009. 6월 MIWON VIETNAM 베치공장장
2004. 10월 ~ 2007. 3월 PT.MIWON INDONESIA 수라바야공장장
1995. 1월 ~ 2003. 10월 생산기술본부 발효팀장
1986. 11월 ~ 1994. 12월 기술연구소/중앙연구소 연구원
●해외 연수
1989. 1월 ~ 1991. 2월 미국 PRINCETON BIOMEDITECH CORP.(PBM)
●기타 경력
2017.1월 ~ 현재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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