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두 문장을 앞뒤로 배치한 시, 나태주의 '풀꽃'은 마음의 중요한 비밀을 담고 있는 듯 합니다.
자세히 보는 것과 오래 보는 것은 얼핏 보면 비슷한 말 같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의미가 겹치는 말은 아닙니다. 자세히 보지만 금방 그곳을 떠나야 할 때가 있고, 오래 보았지만 자세히 보지는 않고 그냥 보았을 경우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는 일은 주시(注視)나 주목(注目)의 비밀을 담고 있죠. 주의를 기울여 대상을 깊이 보는 것이 자세히 보는 것입니다.
우리 눈은 사방팔방에 펼쳐지는 모든 대상을 언제나 다 볼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이렇게 시선을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모든 대상을 다 주의깊게 보려고 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대상을 건성으로 보는 방식은, 시야에 들어온 대상 중에서 주시해야할 대상에만 시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눈을 아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시선의 '선택과 집중'입니다.
그런데 선택과 집중을 해서, 풀꽃에 포커스를 맞췄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그전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던 예쁨이 발견되는 것이죠. 그 예쁨은 풀꽃이 늘 지니고 있던 것이고, 어쩌면 예쁨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잘한 형상과 빛을 세밀하게 느끼며 읽어가는 순간, 그 작은 것 속에 들어있는 조물주의 완전함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쁘지 않더라도 그 형상과 빛이 각별해지면서 예뻐지는 것입니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시력을 기울이는 방식의 변경입니다.
▶ 오래 본다는 것과 사랑
그에 비하여, 오래 보는 것은 보는 시간을 늘리는 것입니다. 오래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익숙하게 만들고 그것을 바라보는 행위를 편안하게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태어나 처음 보고 만난 사람에 대한 기억들이 깊이 오래 쌓인 감정입니다.
친구라는 것이 의도적으로 마음을 내어 서로의 사이에 우정이란 감정을 두고 관리하는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친구의 뒷말에 들어있는 구(舊)가 의미하듯 그저 오래된 관계가 낳은 편안함과 익숙함, 그리고 그것이 내는 인간적인 향기 같은 것일 뿐입니다. 조강지처가 담고 있는 말 또한 그렇죠. 거친 음식을 함께 나눠먹으며 고락을 같이 해오는 동안,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처럼 영혼이 결합하는 느낌을 지니게된 존재가 그것입니다. 모두, 오래 보았기 때문에 생긴 감정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는 것'의 결과는 예쁨으로 표현했고, '오래 보는 것'의 결과는 사랑스러움이란 감정으로 나타냈죠. 이게 그냥 채택된 말이 아닌 거 같습니다. 오래 보는 것은, 보는 시간을 어느 대상에게 들이는 것입니다. 보는 행위가 지속되고 보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그 대상의 특징에 부응하여 좋음과 나쁨을 결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냥 까닭도 모르게 좋아지는 마음의 변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 오래 보지 못하는 일의 괴로움이 그리움이다
오래 보는 일은, 관계의 합일을 꿈꾸는 이들의 소원입니다. 하지만 자주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 오래 보고 싶었지만 헤어져야 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오래 보지 못하기에 사랑이 익지 못할까 염려한 조물주는 '그리움'이란 감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래 보지 못해도, 한번 본 그 얼굴을 오래 기억의 폴더에 저장해놓고 수시로 꺼내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눈빛과 그 입술과 그 표정과 그 말투와 그 냄새까지.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과 그날의 공기와 하늘의 빛깔까지 통째로 마음의 어딘가에 넣어 늘 꺼내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오래 보노라면 마치 실제 대상을 오래 본 것처럼 관계를 익숙하게 하고 간절하게 하고 더욱 사랑스럽게 합니다.
나태주가 자세히 보는 것과 오래 보는 것을 말하기 위 그냥 풀이나 그냥 꽃을 든 것이 아니라, '풀꽃'이란 대상을 정하여 보여준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풀은 자세히 보아도 예쁠만큼의 오밀조밀함을 갖추고 있지 않을 수 있고, 꽃은 오래 보지 않아도 한눈에 예뻐서 시간이 주는 예쁨의 강화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꽃도 아닌 것 같이 쩨쩨하게 피어있는 자잘한 꽃, 혹은 풀도 아닌 것이 마치 풀떨기처럼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포옥 숙이고 낮은 키로 지상 위에 겨우 흔들리고 있는 풀. 그래서 풀꽃은, 자세히 보아야할 비밀을 지니고 있는 꽃이고 오래 들여다 보며 감정을 키울 의미가 있는 무명의 여인입니다.
▶ 아내를 다시 보라
돌아보면 결코 길지 않아 보이는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오래 본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귀한 일입니다. 어떻게 저 존재는 내게 다가와 오래 보여지는 대상이 되었는가. 내 마음의 무엇이 그를 당겨 이토록 무릎을 꿇고 앉아 함께 바라보게 되었는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바라보는 일도 쌓이면 이토록 두텁고 흐뭇한 감정이 된다는 것. 그 풀꽃을 아내에게 혹은 친구에게 혹은 가족들에게 느껴보라고, 시인은 가만히 저 짧은 귀띔을 해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풀꽃을 지나쳐 가버리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속삭이는 말. /빈섬·시인
그런데 선택과 집중을 해서, 풀꽃에 포커스를 맞췄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그전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던 예쁨이 발견되는 것이죠. 그 예쁨은 풀꽃이 늘 지니고 있던 것이고, 어쩌면 예쁨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잘한 형상과 빛을 세밀하게 느끼며 읽어가는 순간, 그 작은 것 속에 들어있는 조물주의 완전함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쁘지 않더라도 그 형상과 빛이 각별해지면서 예뻐지는 것입니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시력을 기울이는 방식의 변경입니다.
▶ 오래 본다는 것과 사랑
그에 비하여, 오래 보는 것은 보는 시간을 늘리는 것입니다. 오래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익숙하게 만들고 그것을 바라보는 행위를 편안하게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태어나 처음 보고 만난 사람에 대한 기억들이 깊이 오래 쌓인 감정입니다.
친구라는 것이 의도적으로 마음을 내어 서로의 사이에 우정이란 감정을 두고 관리하는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친구의 뒷말에 들어있는 구(舊)가 의미하듯 그저 오래된 관계가 낳은 편안함과 익숙함, 그리고 그것이 내는 인간적인 향기 같은 것일 뿐입니다. 조강지처가 담고 있는 말 또한 그렇죠. 거친 음식을 함께 나눠먹으며 고락을 같이 해오는 동안,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처럼 영혼이 결합하는 느낌을 지니게된 존재가 그것입니다. 모두, 오래 보았기 때문에 생긴 감정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는 것'의 결과는 예쁨으로 표현했고, '오래 보는 것'의 결과는 사랑스러움이란 감정으로 나타냈죠. 이게 그냥 채택된 말이 아닌 거 같습니다. 오래 보는 것은, 보는 시간을 어느 대상에게 들이는 것입니다. 보는 행위가 지속되고 보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그 대상의 특징에 부응하여 좋음과 나쁨을 결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냥 까닭도 모르게 좋아지는 마음의 변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 오래 보지 못하는 일의 괴로움이 그리움이다
오래 보는 일은, 관계의 합일을 꿈꾸는 이들의 소원입니다. 하지만 자주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 오래 보고 싶었지만 헤어져야 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오래 보지 못하기에 사랑이 익지 못할까 염려한 조물주는 '그리움'이란 감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래 보지 못해도, 한번 본 그 얼굴을 오래 기억의 폴더에 저장해놓고 수시로 꺼내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눈빛과 그 입술과 그 표정과 그 말투와 그 냄새까지.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과 그날의 공기와 하늘의 빛깔까지 통째로 마음의 어딘가에 넣어 늘 꺼내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오래 보노라면 마치 실제 대상을 오래 본 것처럼 관계를 익숙하게 하고 간절하게 하고 더욱 사랑스럽게 합니다.
나태주가 자세히 보는 것과 오래 보는 것을 말하기 위 그냥 풀이나 그냥 꽃을 든 것이 아니라, '풀꽃'이란 대상을 정하여 보여준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풀은 자세히 보아도 예쁠만큼의 오밀조밀함을 갖추고 있지 않을 수 있고, 꽃은 오래 보지 않아도 한눈에 예뻐서 시간이 주는 예쁨의 강화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꽃도 아닌 것 같이 쩨쩨하게 피어있는 자잘한 꽃, 혹은 풀도 아닌 것이 마치 풀떨기처럼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포옥 숙이고 낮은 키로 지상 위에 겨우 흔들리고 있는 풀. 그래서 풀꽃은, 자세히 보아야할 비밀을 지니고 있는 꽃이고 오래 들여다 보며 감정을 키울 의미가 있는 무명의 여인입니다.
▶ 아내를 다시 보라
돌아보면 결코 길지 않아 보이는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오래 본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귀한 일입니다. 어떻게 저 존재는 내게 다가와 오래 보여지는 대상이 되었는가. 내 마음의 무엇이 그를 당겨 이토록 무릎을 꿇고 앉아 함께 바라보게 되었는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바라보는 일도 쌓이면 이토록 두텁고 흐뭇한 감정이 된다는 것. 그 풀꽃을 아내에게 혹은 친구에게 혹은 가족들에게 느껴보라고, 시인은 가만히 저 짧은 귀띔을 해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풀꽃을 지나쳐 가버리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속삭이는 말. /빈섬·시인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