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촌'·'전라도'…지역의 본모습 조명하는 책들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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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입력 2017-10-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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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춘호 '봉인된 역사', 이춘구 '신바람 나는 전라도 정신' 출간

'봉인된 역사'·'신바람 나는 전라도 정신'. [사진=푸른길·전북대출판문화원 제공]


세계사, 동아시아사, 한국사 그리고 서울사··· 교과서나 무수한 단행본들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거대 단위' 역사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지방분권, 지역불균형 해소 등과 관련한 문제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역도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지역은 관심의 불모지대다. 연구자의 질적·양적 편차는 차치하더라도 열악한 지자체 재정, 젊은 층의 이탈, 수도권 위주로 돌아가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정책은 지역을 지그시 둘러보려는 시도조차도 무력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 지역의 역사와 사람, 정신을 톺아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발간된 '봉인된 역사'(윤춘호, 푸른길 펴냄)와 '신바람 나는 전라도 정신'(이춘구,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은 대중적이진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봉인된 역사' 저자 윤춘호 [사진=푸른길 제공]


◆ 대장촌, 그 숨겨진 역사적 실체를 현재로 불러내다

"우리가 배우고 기억해야 될 것은 저항하고 투쟁했던 역사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수치스럽고 굴욕에 찬 역사는 봉인해서 언제까지 묻어 두어야 하는 것인가?" 

지상파 방송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 윤춘호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이웃사촌이지만 적대적 공존관계로 살았던 작은 농촌마을 '대장촌'(현 전북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이러한 질문으로 책의 첫머리를 시작한 것은 시대가 총체적으로 기록되지 못하고 선택 받은 사실만으로 재구성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우리가 아무리 외우고 배워도 그 시대는 손으로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말마따나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선택 받지 못한 역사는 묻혀 버렸다. 투쟁과 저항의 기억만이 남고 다른 기억들은 봉인돼 묻혀 버린 것이다. 

'큰 농장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대장촌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지주들이 이 마을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일제의 조선 침탈이 시작된 을사조약 체결을 전후로 일본인 지주들은 경쟁적으로 이 일대의 땅을 사들이면서 제국주의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배로 대장촌에서 밀려날 때까지 대장촌의 완벽한 지배자로 군림했다. 대장촌 일대 토지의 80%가 일본인 지주들의 소유였고, 대장촌 농민들 가운데 이들의 소작인이 아닌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처럼 마을의 역사는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그리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니다. 일본인들의 주도로 농장이 세워졌고, 일본인들이 철도를 놓았으며, 학교를 열었고, 전기와 상수도를 들여왔다. 뱀처럼 구부러진 만경강을 직강화한 것도, 15년에 걸친 대역사를 통해 초대형 제방을 완공해서 이 마을의 영원한 숙제였던 홍수문제를 해결한 것도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패전과 함께 이 동네를 떠난 일본인 지주들의 이야기는 서둘러 봉인됐다. 그들이 살던 집, 운영하던 거대한 도정공장, 그들이 세운 철도, 역사와 도로는 지금도 남아 있지만 일본인 지주들의 존재 자체는 지워졌다. 그들의 행적이 철저히 봉인되면서, 그들의 맞은편에 서 있었던 조선인 소작인의 이야기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저자가 밝히고자 한 것은 대장촌이라는 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슨 일이 있었으며, 거기에 산 사람들이 누구였는지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의 대장촌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되살리고 싶었다"며 "민족에 상관없이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을 현재로 불러내고 싶었다. 가능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는 백골도 진토되었을 그 동네 사람들의 역사적인 실존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신바람 나는 전라도 정신' 저자 이춘구 [사진=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 '전라도 정신'의 체계화

이춘구 전북대 산학협력단 교수는 전라도 정신을 방정원융(方正圓融)의 창조적 도전정신으로 규정한다.

방정은 네모 반듯하면서도 하나로 모이는 방정회통(方正會通)으로, 전라도의 선비정신·절의정신을 가리킨다. 원융은 원만구족하면서도 걸림이 없는 자유자재의 원융무애(圓融無碍)로, 전라도의 풍류사상·대동정신을 가리킨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전라도 정신이 대한민국 정신의 원형질인 풍류사상에서 비롯되며,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를 실천하는 길로 분석한다. 그는 또 백제시대와 조선시대가 전라도 정신의 벼리를 형성하는 것으로 깊게 접근하며, 익산 왕궁과 미륵사지 등 유적지를 찾아 백제정신의 형성과 발현·도전 등을 살펴 나간다. 그에 따르면 소서노로 상징되는 위대한 도전과 개척정신, 개방적인 해양문화, 도시국가연합으로서 평화연대와 저항정신, 창조적 정신이 백제정신의 정수다.

경기전과 전라감영 등 조선의 역사유적 현장에서도 전라도 정신을 찾아낸다. 이 교수는 조선 창업 전의 역사적 순간, 즉 전주 오목대에서의 이성계와 정몽주의 갈등구도가 전라도 정신의 축이라고 본다. 태조를 통한 새로운 창업의 정신과 포은을 통한 저항과 절의 정신이 그것이다. 대동세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동학혁명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산·강·호수·들 등의 지정학적 조건에서도 전라도 정신을 발견하며, 지리산의 노고 할머니부터 부안 수성당의 계양할미까지 뻗쳐 있는 신령스러운 기운과 더불어 청년들이 새만금에서 무한한 창조의 꿈을 펼쳐 나가기를 바란다. 공간은 물론이고 계절의 변화까지 3차원으로 풀어가면서 4차원의 영적 세계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시도가 눈길을 끈다.

저자는 방송기자로서 일하며 전라북도 내 역사유적 현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현장에서 보는 역사는 책에서 보는 역사와 상당히 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현장을 지키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입장에서 접근하니 전라도 역사의 실체가 드러나고 정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저널리즘적 시각과 아카데미즘적 시각이 교차하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 속에서 전라도 인의 치열한 삶과 그 속에서 구현되는 전라도 정신을 담아냈다. 때로는 서사적으로 도도한 역사의 강물의 흐름을 따라잡고, 또 때로는 서정적으로 짙게 밀려오는 전라도 인의 한(恨)의 물결을 그려낸다.

'온전한 대한민국, 하나의 대한민국'을 꿈꾸는 저자는 "모두 신바람 나게 춤을 추고 열심히 일하며, 함께 사는 대동세상을 건설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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