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기백(己百) 기천(己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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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전통문화연구회 회원
입력 2017-1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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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己百) '기천'(己千)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더러 있다. 한자 성명이 통용되던 시절 이름에 흔히 쓰는 '터 기(基)'가 아닌 '몸 기(己)'자라서 약간 의아해 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중용'(中庸) 20장을 아는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 뛰어난) 남이 단번에 해내는 일을, 자신은 (그만 못해도 포기하지 말고) 백번 하라. 남이 열 번에 해내면 자신은 천 번 하도록 하라(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인일능지 기백지 인십능지 기천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면 아무리 어리석어도 사리에 밝게 되며, 유약해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과능차도의 수우필명 수유필강)." 바로 여기서 기백, 기천을 따온 것이다.

'이름의 뜻을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가라'는 견명사의(見名思義) 전통에 따른 자식에 대한 기대이자 염원이다. 한자권에서는 대부분 이름에 이처럼 부모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형제의 이름도 그렇다. 고대의 성인인 순임금의 신하처럼 국가에 충성하라는 뜻으로 순신이라 했고, 그의 형 요신(堯臣), 동생 우신(禹臣)도 요임금 우임금을 보좌해 태평성대를 이룬 신하들처럼 공익을 위해 살라는 부모의 희망이었다. 결국 충무공은 이름값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다.

이름이 기백, 기천은 아니어도 그 의미를 100% 이상 실천한 사람이 숙종 때 백곡 김득신(金得臣)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김시민 장군 손자였던 그는 요즘으로 치면 거의 지진아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같은 책을 수년 동안 1만 번 이상 읽는 노력 끝에 훌륭한 문장가가 됐다.

아들이 워낙 우둔해 막막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아버지 김치(金緻)의 교육 덕분이었다. '배우는데 진도가 좀 늦다고 성공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저 읽고 또 읽으면 반드시 대문장가가 될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 김득신은 이러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따라 마침내 훌륭한 문인이 됐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이룬 인간승리였다.

백곡은 자신이 생전에 지었다는 묘비명에서 "남보다 못하다고 한계를 짓지 말라. 나처럼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노력하여 결국은 해냈다"며 후손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논어 '옹야' 10장에서도 공자가 포기하려는 제자 염구에게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고 했다. 해보지도 않고 자기를 특정 테두리 안에 가두면 퇴보밖에 없다고 타이른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가능으로 바꾼 김득신 얘기와 중용 20장에 이르면 나는 감동하면서도 마음이 늘 불편해진다. 서당의 동료 가운데서도 나의 이런 느낌에 동의하는 이가 꽤 있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자책감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뒷맛은 개운치 못하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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