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한 일간지에 연재된 소설 '삼대'는 식민지 현실에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세대갈등을 다룬 염상섭(1897~1963)의 대표작이다. 삼대는 서울의 한 중산층 집안에서 벌어지는 재산 싸움을 중심으로 1930년대 다양한 이념의 상호관계와 더불어 유교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당대를 생생하게 그려내 문단과 대중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신문 연재 이후 곧바로 단행본으로 출간될 계획이었으나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결국 해방 후였던 1947~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상·하권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됐다.
염상섭은 1920년대 당시 문단의 양대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 노선을 견지했으며, 특히 3·1운동에서 4·19혁명까지 우리나라의 궤적을 담은 작품을 내놓은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염상섭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의 희귀 작품집을 공개하는 전시회가 열려 주목을 끌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박주환)은 내년 2월 25일까지 본관 1층 전시실에서 기획전 '염상섭 문학전: 근대를 횡보하며 염상섭을 만나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선 근대화가 나혜석(1896~1948)을 모티브로 삼아 당대 주요한 관심사였던 자유연애와 신여성의 결혼문제를 그려낸 '해바라기'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실제로 염상섭과 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웠으며 나혜석은 염상섭의 또 다른 창작집 '견우화'의 표지화도 그렸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흔히 염상섭의 첫 창작집으로 1924년 8월 10일 발간된 '만세전'를 생각하지만, 그보다 열흘 먼저 세상에 나온 창작집이 1924년 7월 31일 박문서관에서 발간된 '해바라기'"라며 "발간 시기와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해바라기'는 우리나라 근대문학에서 매우 가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황석영 작가가 뽑은 한국 명단편 중 하나인 '전화'가 수록된 단편 소설집 '금반지'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그의 작품을 필두로 7개 주제로 나뉘어 구성된다. 1부 '염상섭 문학의 출발: '만세전'과 '일본 오사카 독립선언''에서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염상섭의 독립운동 행적과 이 시기를 전후하여 탄생한 소설 만세전(원제: 묘지·1922)을 조명하고, 2부 ''폐허(廢墟)'의 식민지에서 피어올린 '견우화(牽牛花)''에서는 일본 유학을 끝내고 조선으로 돌아온 염상섭의 주요 활동을 살펴본다. 그는 1924년 한해 동안 '해바라기', '만세전', '견우화' 3권의 창작단행본을 출간했다.
새로운 창작 경향을 보여주는 소설집 '금반지'와 그 가운데서도 근대적 문명인 전화의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식민지 부르주아의 일상과 풍속을 그려낸 단편 '전화'를 오디오로 감상하고, 한국근대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삼대'에 나타나는 식민지 경성과 조선인의 삶의 모습을 엽서, 삽화, 비디오 등 다양한 시각자료로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이 밖에도 전시장에선 해군 입대 후 염상섭의 삶을 그려볼 수 있는 다양한 유품, 한국전쟁기 서울시민의 삶의 모습을 다룬 작품 등을 접할 수 있다.
박주환 관장은 "국립중앙도서관은 그동안 국가문화유산으로서 가치 있는 근대문학자료의 수집·보존에 힘써 왔다"며 "이번 전시가 근대문학자료들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고, 한국 문학의 거목 염상섭 작가를 새롭게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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